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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목적이 왜 역사교육을 해야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라면 역사교육의 목표는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하위의 대상이다. (이러한 교육목표는 학교교육목표, 교과목표, 학년목표, 단원목표, 수업목표(학습목표)의 순서로 단계를 나눌 수 있다. )

 

역사교육에 목적에 대한 논의의 흐름은 기존 사학자들의 역사에 대한 목적과 연결지어 주장하는 경우에서 1990년대 들어 사회과 통합에 따른 역사교육 위상의 약화라는 배경속에 역사교육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존 목적론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며 역사적 사고력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와 함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위 목표를 제시되었는데, 초기에는 단순히 일반화된 막연한 목표를 사용했다. 계열성이나 체계성이 없이 그럴듯하게 작성되거나 단순히 블룸, 콜담과 파인즈, 피전, 와이즈먼 등이 제시한 준거에 맞춰 목표가 제시되었다. 이러한 목표체계들은 1990년대 역사교육 이론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이후로 비판받았다. 그 대안으로 새롭게 역사적 사고에 기초해 역사교육 목표를 설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즉 1990년대 사회과 통합을 기점으로 역사적 사고력을 매개삼아 잘 정리해 놓아야 될듯)

가장 먼저 역사적 사고력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답하면 어느정도 목표가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구체적으로 역사적 사고력의 하위범주에 대해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기존의 블룸의 교육목표, 콜담과 파인즈 등의 기존 교육 목표 분류학과 역삭육 목표에 관한 연구들을 역사적 사고력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해석했다. 이것이 진전되어 역사적 사고력의 하위범주가 일정 구체적으로 제시가 되게 된다. 이후의 발전된 연구들은 이러한 개념을 직접 현장에 실제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있다. 즉 역사적 사고력이 실질적인 교육 목표에 반영되는 것, 역사적 사고력에 기초한 교육 목표 계열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표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도 있다. 교육목표를 중요성을 강조하면 세밀하게 기술된 목표를 제시하지 않으면 교과 내용 선정이나 교수 과정이 막연해지고 타당성이 없어지며 일관성을 잃을 염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교육목표 설정을 반대하는 사람은 목표가 제시되면 어떤 과목의 교육내용도 그 목표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 교사가 명확한 수업목표를 계획하고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가르쳐야 하나에 관심이 많으나 교육목표가 없으면 방향을 잃고 지식 중심의 교육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교육목표를 상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역사교육의 목표에 대한 논의사례들은 다음과 같다.

1.블룸의 교육목표 분류.

블룸은 교육목표를 크게 인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으로 나누었는데, 그를 세분하면

인지적 영역에는 지식, 이해력, 적용력, 분석력, 종합력, 평가력과 함께 그 하위 기능, 정의적 영역에는 감수, 반응, 가치화, 조직화, 인격화와 하위 기능들이 있다. 블룸의 교육목표학은 하나의 뚜렷한 위계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콜담과 파인즈의 목표 분류

블룸의 목표분류학을 활용해 역사교육의 목표를 정교하게 분류한 사람으로 콜담과 파인즈가 있다. 블룸이 교육의 일반적인 교육목표에 대해서 다루었다면 콜담과 파인즈는 역사교육의 특성을 고려해 작성한 것이다.

3.국가 교육과정의 목표분류

각 국가별로 교육목표를 보아 그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적 목표를 살펴볼 수도 있다.

(1)미국 역사과 국가표준

1994년 미국 역사과 국가표준은 역사적 사고기능과 역사적 이해로 나누어 목표를 제시했다. 사고 기능은 과거,현재,미래를 차별화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증거를 찾고 평가하며, 과거사료들을 비교, 분석하고, 역사적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등의 기능을 말한다. 역사적 이해는 가족, 지역사회, 국가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할 사실이다.

미국 역사과 국가표준은 역사적 분석과 해석, 탐구능력, 역사적 쟁점의 분석과 의사결정 등 기능 목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미국 역사과 국가표준의 특징이다. 즉 현대사회의 학생들이 복잡한 사회적 문제들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한 능력을 강조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2)영국 역사교육의 목표

1995년 개정된 영국 국가교육과정의 목표들은 과거 사회 및 시대의 특징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능력,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 역사적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고 분석하며, 평가하는 능력, 정보원을 다각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등이 중시되고 있다.

(3)우리나라 역사교육의 목표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역사교육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역사교육의 이해에 나온 2001년에 발표된 7차교육과정 개정안 내용은 개정되었음으로, 나중에 다른 내용을 찾아보아야 겠음요(-_-;)

 

 

이것들을 참고해 일반적으로 목표에 나타난 구체적인 행동영역 별 목표 및 준거에 대해서 정리해볼 수 있다. 정리하면 지식의 이해, 기능(탐구, 사고력, 상상적 이해, 의사결정,),가치및 태도로 나눌 수 있다.

 

(1)지식·이해

역사과 목표로 지식 이해는 역사의 기본적 사실, 개념, 일반화, 등을 기억하거나 이해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개념 뿐만 아니라 특수개념과 시간개념들도 포함된다. 블룸은 특수한 것의 지식과 이를 다루는 수단의 지식, 그리고 보편적인것과 추상적인 지식을 예로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세분 분류하면, 역사적 사실의 이해, 주요용어와 개념을 이해하기, 일반화 및 원리의 이해, 역사적 자료 및 탐구방법의 이해를 들 수 있겠다.

 

(2)기능

기능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재능을 가리킨다. 따라서 기능을 가진다는 것은 곧 어떤 일에 대해 능률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교육에서의 기능은 학생들의 역사적 탐구능력과 문제해결능력의 신장을 위한 중요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구체적 학습능력의 신장과 관련된 기능(역사적 용어, 참고자료, 정보나 관찰 결과, 지도, 연표, 통계를 비롯한 자료해석, 의사 발표, 토론 활동), 고차적 사고력 학습에 관한 기능(학습 문제 확인, 연구 계획, 가설 형성, 가설 검증을 위한 근거 마련, 자료 수집, 결과 예측, 추론하고 증명, 결론 도출, 일반화), 상상적 이해와 관련된 기능(감정이입, 추론, 유추, 보간, 삽입, 해석), 의사결정과정과 관련된 기능(문제인식, 분석, 대안 확인, 결과 예상, 전략 선택 발전, 전략 적용)이 있다.

 

(3)가치 및 태도

역사교육에서는 학생에게 일반적 가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시키며, 실제적 행동에서 나오도록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위해 주입보다는 명료화, 가치분석의 방법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즉 학생들 스스로 가치를 선택하게 하고 그 가치를 소중하게 하며, 나아가서 선택한 가치와 일관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것.

 

 

 

이러한 기능적 근거와 함게 교육목표 설정의 근거로 학문적 측면, 사회적 측면, 학습자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학문적 측면은 교과 전문가의 견해, 사회적 측면은 현대사회에 관한 사실, 학습자 측면은 학습자에 관한 사실과 관련된 것이다.

기존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사회적 측면의 역사교육이 강조되었으나 최근에 와서야 지식이해, 기능, 가치태도로 비교적 균형있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학습자 측면을 고려한 목표를 좀더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목표모형 이론에 너무 종속되어 역사의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점, 중학교 사회과의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가 제시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역사교육 목표 설정시 학문적 측면을 고려해 역사교육의 목적이나 목표 분류를 준거로 활용 할 수 있다. 지식 이해 영역을 강조해야 하지만 이를 너무 강조할 경우 수업이 천편일률적 진행을 할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세가지 영역을 균형 있게 활용해야 한다.

사회적 측면은 보통 국가적 수준에서 다뤄지므로 학교 수업에서 크게 유념할 필요는 없지만 역사교육이 공동체 문화 유산의 전승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목표설정을 하면 된다.

학습자 측면은 국가적 단계 뿐만 아니라 학교 수업에서도 더욱 중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심리적 측면을 고려하긴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지므로 교사들은 학생수준이나 흥미를 고려해 역사교육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교육목표는 학교급별이나, 추상성과 포괄성의 정도에 따라 몇 단계로 분류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위계화라고 한다. 교육목적과 수업목표를 구분하고, 수업목표를 다시 일반적 수업목표와 명세적 수업목표로 구분할 수 있으며, 초중고등학교 별로 역사교육목표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수준별 차이가 드러나도록 체계화 해야 한다.

 

또한 목표는 가급적 구체적으로 진술되어야 한다. 교육목표의 상세화가 이루어지면 교사는 자기가 가르쳐야 할 내용과 행동을 분명히 파악해서 수업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전개할 수 있다. 또한 학습동기의 유발과 평가문항 작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를 보통 명시적인 행동목표라고 하는데 이는 구체적 진술을 위해 행위동사를 이용해 달성해야 할 목표 수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하며, 내용과 행동을 함께, 학생의 행동으로 진술해야 한다.

이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어 있는데 이를 구현목표라고 한다. 이는 교사가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특별한 목표나 행동형석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사고-감정-행동의 형식을 이끌어 가도록 의도한 것이다. 구현목표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수업의 범주만을 규정한 것으로 과정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하지만 구현목표는 평가의 어려움과 객관성이 부족이라는 단점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과의 특성상 명시적 행동목표와 구현목표의 장점을 적절하게 취해 적당한 학습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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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논제2013. 5. 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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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춘추전국시대와 유가의 성립

유교는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옛 씨족 공동체가 파괴되어 지방 각지에서 세력들이 난립하고 있었고, 각자 부국강병을 도울 인재를 원했다. 이것이 사회 구성원의 신분 상승 욕구와 맞물리며 새로운 지식의 형태가 요구되었고, 그 결과로 다양한 학문적 입장들이 난립했으며 이들을 제자백가라고 부른다.

 

특히 유학은 현실적이면서도 개혁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학파로 춘추시기 이전 서주시대의 정치질서를 이상화하는 입장이었다. 종법제도와 봉건제도에 기반을 둔 군주중심의 도덕적 정치로의 회복을 주장하며, 하극상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역할을 바르게 할 것을 주장했다.

즉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상황은 덕이 없는 시대(무도지계)이며 이러한 혼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예와 악으로 교화를 통해 이전시대로의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가에서는 정명론을 제시하는 등 사회의 각 계층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다양한 인간관계를 규정해놓았다. 그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인(仁)이다. 또한 이러한 인을 행하게 하는 인간적인 본질은 효와 자이다. 이러한 효와 자를 바탕으로 인을 체득해 행하는 인간을 군자라고 칭했으며, 자기 수양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교는 개인적 수양뿐만 아니라 수기치인을 기본 이념으로 했으며 이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나타난다.

 

 

2.유교에서 과거제도와 관학의 취지[각주:1]

(유가는 학문적이론적 영역으로 대변되는데 비해 유교는 실천적 교화적인 목적으로 갖는다는 차이점이 있겠다.)

유교에서는 치자의 학문이라는 점, 국왕을 점적으로 하는 봉건체제를 이상화하는 점이 정치이념과 관련이 깊다. 이러한 주장은 왕권강화를 위한 이데올로기 기반으로 기능하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가에서 관학을 두고 후대의 유교국가는 과거제도의 실시했다. 이것은 국왕권 혹은 군권의 강화와 관련되는데 관료제를 통해 중앙집권적 통치 및 지방 호족들을 왕 아래에 일원적으로 통합하는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유교적 교육제도 또한 왕권강화와 관련해 의미가 매우 컸던 것이다.

 

3.유학의 목적과 학습방법

유학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수양과 지적 체득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시대별로 많은 학자들이 유학의 목적을 정의했지만 도덕적 수양을 가장 근본적 목적으로 제시했으며 따라서 그 방편으로 도덕에 대해 정의하고(오륜, 오상 등등) 그것을 수양하는 법을 논한 것이 많았다. 또한 이러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교육도 강학과 제향공간으로 구분해 실시했다. 강학은 교수학습 공간, 제향은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서원을 떠올리면 될듯) 제향 공간은 유교적 교육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으로 이 공간이 지니는 의미는 동양적 스승관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유학에서는 자발성을 중요시해 조장을 하지 않았으며, 하학상달의 학습원리가 적용되어 구체적, 일상적에서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기본적 경전을 학습함에도 순서가 있고 온고지신의 원리가 강조되었다.

 

4.유학의 의의와 한국에 준 영향

유학은 기본적으로 수기의 학문이지만 치인을 위한 학문이기도 했다. 이것은 한중일을 비롯한 국가적 유교 문화 형성의 바탕이 되었다.

유학은 그 시대적 발전에 따라 맥을 같이 한다. 한자와 유교의 도입은 제도적 교육성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제도교육의 형성과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기본적으로 유교사상은 도덕적 이상의 실현, 나아가 전체적 인간 이상의 실현을 지향한다. 그러한 방편으로 수기한 후 치인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며, 이러한 논리는 국가 관료제 형성의 이데올로기적 기반과 왕권 강화에 이용되게 했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유교의 교육적 성격을 이해해야 할듯.

  1. 신태식교육학에서는 유가사상과 제도교육의 발달이라고 제목을 설정하면서 유가사상과 유교에서 과거제도와 관학의 취지, 유학의 목적과 학습방법이라고 소제목을 나눠놨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유가사상과 유교, 유학은 비슷한 말이지만 뉘앙스 차이가 엄연한데 이렇게 써놓는건 적절치 못한듯. 단순히 유교가 국교화된 한나라때에도 과거시험이 실시된건 아니니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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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
카테고리 없음2013. 5. 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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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교육운동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번져간 교육개혁운동을 뜻한다. 형식적, 권위주의적인 학교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민주적 시민사회에 맞게 생활중심, 아동중심으로 개혁하려 한 교육운동.  이를위해 다양한 개별화학습 프로그램, 문제해결법, 구안법, 등을 통해 문제해결에 대한 실천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종합적으로 획득해 현실적인 실제적 생활이나 생활활동을 자연환경 속에서 전개시키는 방법이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여러 지역사회학교가 생겨났다.(써머힐, 발도르프, 프레네, 듀이의 실험학교)

 

2.닐(A.S. Neill)과 써머힐

닐은 스코틀랜드의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권위주의적 교육의 피해를 많이 보았다. 이후 청년기에는 버나드 쇼와 웰즈의 영향으로 문명비판적인 사회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후 프로이트파 정신분석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을 중시하게 된다. 닐은 1924년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대신, 아이들에게 맞는 학교'라는 설립 목표하에 실험학교(대안학교)인 서머힐을 설립했다. 서머힐은 지금도 있으며, 많은 교육학 책, 다큐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것이 가장 큰 특징.[각주:1]

 

(1)아동관

닐은 아동이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1. 아동은 본래 현명하고 현실적이며, 성실하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자유를 허용하며 아이들의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랑과 존경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

2 어린이의 흥미는 직접적이다.

따라서 아동은 현재의 생활에 열중하고 그 생활 자체가 분주해 훗날을 생각할 겨를이 없고 사회적 의식이나 사회적 책임감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다.

3. 게으른 아이는 없다. 건강한 아이는 하루종일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

4.아이들은 이기적이다.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이타적인 행동은 나중에 생긴다. 이타적인 삶을 강요하면 위선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5.어린이들은 사랑과 이해를 필요로 한다.

 

(2)교육론

①교육목적 : 닐은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발견하는데 있으며 교육의 궁극적 목적도 행복이라고 보았다. 닐은 행복이란 내적인 건강과 균형, 생에 대한 충족감, 억압을 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행복은 인간을 속박하는 권위에서 자유로울때에만 얻어지며,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주는 사랑과 인정에 비례한다고 보았다.

 

②사랑의 중시 : 닐은 사랑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상대방의 편이 되어주는 것 이라고 말했다. 닐은 문제아를 구하는 길은 엄격한 처벌이 아닌 사랑과 이해뿐임을 강조했다.

③자유의 중시 : 닐은 자유를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동시에 자기통제라고 했따. 자기의 자유 의지를 중시하되,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줄 아는 자율적인 어린이가 된다고 보아 자유를 교육론의 기본개념으로 제시했다.

④감성 교육 : 닐은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무의식을 중시했다. 따라서 교육도 두뇌만 강조하는 지적 교육이 아닌 무의식을 중요시하는 감성교육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 하에 놀이를 중시하고 자유, 미술, 공작, 음악, 무용, 연극 등의 창작활동을 할 것을 주장했다.

 

3.슈프랑거의 교육사상

슈프랑거(1882~1963)는 독일의 철학자이며 교육학자로 정신생활의 개념을 문화와 관련시켜 문화적 교육과 문화교육철학의 기본이념을 완성시켰다.

슈프랑거는 교육이란 성숙자와 미성숙자 간의 만남을 통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각성과 같은 것으로 교육을 도야의 개념으로 파악했다. 도야는 스스로 발전하는 정신의 소질 및 생활 영역에 관련된 모든 객관적 가치가 피교육자의 체험, 심정, 창작 능력에서 활발히 성장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슈프란거는 도야의 단계를 나눠 정신발달단계에 따라 기초적, 전문적, 일반적 도야의 3단계로 분류했다.

또한 슈프랑거는 교육의 본질을 문화의 번식으로 보았다. 전대의 문화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다음 세대는 그 문화를 유지하며, 자기 것으로 내면화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으로 창조하여 또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라 했다. 따라서 교육의 본질적 기능은 내면적 세계 각성, 인격적 자아 각성, 문화적 책임 각성을 제시함.

 

4.슈타이너와 발도르프 학교

인지학의 창시자인 슈타이너는 1861년 크로아티아의 작은 마을에서 철도 공무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슈타이너는 빈 공대에 입학해 수학중 괴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괴테의 자연과학적 연구방법에 정통하게 되었다. 이후 1864년 뇌수종을 앓는 아이의 가정교사를 한 그는 이 학생이 김나지움에 입학한 다음 의사가 되는데 기여했으며, 이것을 기초로 교육론을 형성했다. 이후 1919년 슈투트가르트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공장 노동자들에게 공장 노동자들의 자녀교육을 위한 강연을 한 것을 계기로 이들을 위한 학교인 자유 발도르프 학교를 개설했다.

 

슈타이너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초를 두고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본성의 표면 밑에 있는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다.(인지학적 인간관) 따라서 아동의 형상 외관, 태도로부터 아동의 본성과 본질을 알아내고 이것을 강화시켜 타고난 것을 최상의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발도르프 교육의 주요 목표이다. 그러므로 비슷한 기질의 아이를 묶어 놓는 것이 효과적.또한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방법으로 본보기와 모방의 원리, 감각을 통한 교육, 리듬을 통한 질서의 원리를 이용할 것을 제시했다.

 

슈타이너는 인간의 본질을 물리적 신체, 에테르체(생명체), 아스트랄체(감정체), 자아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본질은 7년을 주기로 순서대로 탄생한다고 했다.

또한 인간이 태어나기 전 정신세계에서 가져 온 것과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를 결합해 나타난 것을 기질로 규정하고 기질도 구분했다. (심리상담같은거 해보면 가끔 시키는거.ㅋ.ㅋ)

담즙질: 기분이 강하고 뜨겁고 격하고 행동이 실제적

다혈질: 성격이 급하고 충동적이며 감정적.

점액질:기분이 움직임이 적고 침착 평안하다.

우울질:기분이 자기 내면에 있고 감상적이다.

 

발도르프 학교는  온전히 자유로운 정신의 삶의 근거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앞서 '그 인간에게 어떤 소질이 있으며, 무엇이 그 소에서 계발될 수 있을지'물어야 하며 교사는 여혼의 예술가로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스스로 변화하고 감동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교육적 이념을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교육과정의 방침이 있지만 전적으로 교사가 교육과정을 정하고 가르치는 방법을 정하도록 했으며 대부분 오전에는 사고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기본교과를 오후에는 예술활동과 육체적인 힘을 사용하는 교과를 배치했다. 모든 교사는 원칙상 동등한 권리를 같고 목요일마다 교사회의를 통해 이것을 실현중이다.

구체적으로 1~8학년까지는 연속담임제를, 9~12학년을 전문분야의 교사들에 의해 가르쳐지는 두단계로 세분화 되어 있으며, 8년동안 계속해서 담임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기본교과는 3~4주간을 단위로 매일 아침 첫 두시간에 일정한 교과를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에포크(epoch)수업을 실시한다. 외국어 교육은 1학년부터 실시하며 성적평가와 유급, 낙제를 폐지한다.

 

5.프레네와 프레네 학교

프랑스의 초등학교 교사이자 프레네 교육학의 창시자인 프레네는 공교육 개혁을 위해 교육방법론을 창안했다. 프레네 교육으 학습시 학생들의 동기와 자발성을 매우 중요시하며, 학생들의 자신의 삶과 경험에 기초해 스스로 학습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배운다.

능력에 따라 가르치거나 차별하지 않고 각자의 속도와 리듬을 중시하고, 경쟁이 아닌 협동을 중시하며 모든 학생이 낙오하지 않게 돕는다. 교사들이 나눔과 연대를 통해 모든 자료와 철학을 공유하고 발전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같은 방법론이다.

자발성에 기초한 학습을 통해 스스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자기진도조절학습'이라는 공립학교에서 저마다 자기만의 진도를 갖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프레네 교육은 공교육 안에서의 대안적인 교육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별도의 학교를 내세우기 보다는 뜻있는 교사들이 기존의 학교를 프레네 방식으로 운영한다.  예컨대 다른 교사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지역의 학교로 프레네 교육을 지향하는 교사들이 집단 전근을 신청해 프레네 학교로 바꾸는 경우이다.  우리나라에도 경기 광주 남한산초, 충남 아산 거산초, 경북 상주 남부초등이 있따.

 

  1. 다큐프라임에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서머힐 학교는 종종 보수주의자들에게 공격대상이 되기도 한다. 15년전쯤 영국 교육부(?)와의 마찰로 폐쇄될 위기에 처했었는데 학생,교사,졸업생 등의 노력으로 판결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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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5. 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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宰相之職 臣於治典論之矣 然爲宰相者得其君 然後道行於上 而惠及於下 身榮於前 而名顯於後 而君臣之相遇 自古以爲難也(중략……)噫 臣之遇君誠難 而君之遇臣亦難矣 方今明良相遇 誠意交孚 相與共圖 維新之政 千百年之一盛際也 於是作宰相年表 獨書侍中者 亦以見冢宰之兼衆職 而人主之職 在擇一相 百執事以下不與也

-삼봉집-

 

해석: 재상의 직은 신이 치전에서 논했습니다. 그러나 재상이 되는것은  그 군주를 얻고, 도가 그 위에 행해지고 은혜가 아래에 미쳐 앞에 모엔 영화가 있으며 뒤에는 현명한 이름이 남을 것입니다. 따라서 군신의 만남은 옛부터 어렵게 여겨졌습니다. (중략) 아. 신하와 군주의 만남히 지극히 어렵고 군주와 신하가 만나는 것도 역시 어렵습니다. 지금 진심으로 서로 만나 마음을 다해 교류하니 서로 함께 공도를하고 유신지정을 하니 천년에 한번 있을까 합니다. 재상연표를 만드는데 홀로 시중을 적는것은, 또한 총재는 여러 직을 겸임하고, 인주(임금)의 직은 하나(재상)를 선택하는데 있으니 모든 일을 아래와 더불지 않는 것입니다.

(사료는 임용고사 역사 2005년 기출. 고전종합DB에있는 삼봉집을 아무리 뒤져봐도 저 문항을 찾을 수가 없었다. -_-... 어디 나와있는 걸까.삼봉집 9권 경제문감 재상의직에 있을것 같았는데 아니다. 어디 있는 것일까. 해석도 나같은 초보가 하기엔 어렵다.) 

위 사료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인정사상을 먼저 논한 후에 좋은 군주와 신하가 만나기는 어려운 것을 논하고. 어떤 방식으로 골라야 하는지 논했다. 왕은 재상을 임명하되 다른 정사에는 간여하지 않는 것을 주장했는데(폼떨어진다.. 그런 이유? ㅋㅋ). 이는 재상정치, 의정부 서사제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료의 답으로 의정부 서사제를 논하는 것은 엄밀히 틀린 것. 의정부는 방원이 제2차 왕자의 난(1400)을 평정하고 세자로 책봉된 직후에 사병을 혁파하고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를 세우고 방원이 즉위 후에 본격적으로 6조 직계제를 실시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즉 태조때는 도평의사사에서 재상정치를 행했던 것. (교과서에는 태조 때의 정치가 태조와 정도전 조준 등 소수의 재상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덧붙이면 정도전의 재상정치는 왕권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는 공권적인 측면이다. 왕은 왕으로 군림하지만 사관의 감시를 받으며 공적인 권력만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쨌든 사료에서 말하는 군주는 태조, 재상의 직책은 도평의사사의 재상인 재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개국직후 정도전의 관등 및 관직 은 보국숭록대부 문하시랑찬성사 겸 의흥삼군부사 동판도평의사사사 ............. 쭈욱 많은데 이런걸 답으로 요구하지는 않겠지.?) 그리고 유신지정이란 재상에게 실권을 부여해 왕도를 실현하는 재상 중심의 정치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국정을 재상이 총괄하며, 군주상징적인 존재로 남는 정체를 의미한다.

 

해제: 간단하게 정도전이 쓴 글을 모두 모아서 엮어낸 책이라고 보면 된다. 삼봉집은 조선 건국 이념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삼봉집≫은 1397년(태조 6) 정도전이 살아 있을 때 그의 아들에 의해서 2권으로 간행된 일이 있다. 그 뒤 1465년(세조 11) 그의 증손에 의해서 6책으로 중간되고, 다시 1486년(성종 17) 8책으로 증보되었다.

그러나 지금 전하는 ≪삼봉집≫은 1791년(정조 15)에 왕명으로 다시 간행한 책으로서, 구본(舊本)에 누락된 진법(陣法)과 시문을 수록했으며, 정도전의 사실(事實)에 대한 기록을 보완하고 편차를 다시 분류해 14권 7책으로 만든 것

삼봉집에는 그가 쓴 여러가지 잡다한 글부터 조선경국전, 고려국사, 경제문감, 학자지남도, 팔진36변도보 등 사상적,정치적,군사적 이념들이 담겨있다.

이를 통해 조선의 건국이념의 실현라고도 볼 수 있는 유교적 왕정과 중앙집권 관료체제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 해 볼 수 있다.

 

신유학의 수용: 고려후기 신유학(성리학)이 수용되면서 그것의 정치적 이념도 같이 수용되었다. 신유학은 이상적인 백성의 삶을 개선하여 보장하는 것은 왕정의 임무로 규정했으며, 그것을 인정이라고 했다. 즉 민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왕의 임무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인 이념이 드러나는 대목) 이런 취지에서 민본사상-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이념-이 등장했다.

고려말 시대적 배경: 14세기부터 기존의 권력기반과는 다른 사대부-관료, 지식인-층이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혁신적이고 현실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공민왕때 본격적인 개혁정치가 실시되었을때 이들 사대부층도 많은 부분에 간여했다. 공민왕의 개혁정치는 비록 실패했으나 이때부터 사대부층이 본격적으로 정계에 진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홍건적의 난과 왜구의 침입등을 격퇴하며 성장한 신흥 무인세력(최영,이성계)등과 함께 짝을 맞추면서 개혁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가 권력싸움에서 승리하고 이를 보좌한 정도전과 조준, 남은등(급진파, 역성혁명파 사대부)이 측근 52명을 규합해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게 된다.

정도전의 건국이념: 정도전은 1394년 조선경국전에서 국정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는데 새 왕조는 유교의 성현의 정치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주역의 인정론에 근거해 새 왕조의 왕위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천지의 덕을 본받아 인정을 행해 천하 사방의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성인의 정치를 행한다는 것을 천명했다.

 

... 조선의 중앙관제의 정비에 대해서는 담번에 싹 정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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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세계사토픽2013. 5.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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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각주:1]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욕은 아프리카 전체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이와 같이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전역이 식민지화 되었다. 식민지화 이후의 아프리카는 크게 세부분에 걸쳐서 교과서에 등장한다.

1.세계대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세력 다툼의 한 일면 2. 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과 제3세계 구축 3. 지역 분쟁과 내전. 이렇게 나눈 이유는 단순히 교과서에 등장하는 부분으로 나눈 것, 1960년이 될때까지 이집트, 남아공,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외에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그전까지 크게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음.

 

1.19~20세기 열강의 각축장 아프리카

19세기말 유럽열강의 식민지 확대 경쟁으로 여러 국가의 충돌이 일어나 긴장 관계가 점점 증가했다. 네덜란드계열인 보어인과 영국은 지금의 남아공 지역에서 보어전쟁을 일으켰고(1899~1902), 횡단 정책을 추진하는 프랑스와 종단 정책을 추진하는 영국이 파쇼다에서 부딪쳐 파쇼다 사건(1898)을 일으켰으며, 3B 정책을 추진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황제의 독일과 다른 열강들이 모로코에서 부딪쳐 두차례의 모로코 사건을 일으켰다. (1905, 1911)

제1차 모로코사건은 1905년 독일의 빌헬름2세가 프랑스의 세력권이던 모로코의 탕지르항을 방문해 모로코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을 주장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로인해 에스파냐의 알제시라스에서 프랑스는 영국 및 여러 나라의 지원으로 우월한 지위 보장 및 독일의 양보를 받아낸 사건이다.

 

제2차 모로코사건은 1991년 모로코에서 내란이 발생해 프랑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 독일이 모로코의 아가디로 항에 군함을 파견해 일어난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영국이 프랑스를 강력하게 지지했기 때문에 독일이 양보하고 프랑스가 ㅗ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이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대전이 발생하기 직전 이탈리아는 이토전쟁을 일으켜 트리폴리를 점령하기도 했다. 대전 중에는 아프리카 식민지의 인력과 물자도 전쟁에 동원되었다. 아프리카는 기간 산업(도로, 철도 등)이 부족해 2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군수품, 무기, 부상자 등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동아프리카에서 병사와 짐꾼으로 복무한 아프리카인이 10만 명 이상 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와 모로코는 중립국이었지만 대부분의 식민지는 점령국편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후 상황 정리를 위해 1919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의 원칙이 확인된다.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패전국인 독일의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열강은 식민지를 대부분 그대로 보유했다. 실제로 베르사유 조약에서는 단순히 위임 형식으로 독일의 식민지를 재분할하기만 했던 것이다. 결국 콩고 이북의 독일 점령 지역은 프랑스가 가져 가게 된다. 이에 북아프리카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중 영국을 지원하였던 이집트가 독립 운동을 전개해 결국 독립을 하였으며(1922), 모로코, 튀니지 등도 독립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림 2. 1차세계대전후 아프리카의 민족운동. (더텍스트 세계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아프리카는 희생의 대륙이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독일은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를 점령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 예전 패배를 설욕하고자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는데, 이에 국제연맹이 비난하자 이탈리아는 바로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카이로(1943.2), 얄타(1945.2), 포츠담(1945.7)에서 회담이 열리는데 카이로 회담에서는 일본이 침략하고 점령한 곳을 적당한 시기에 (in due course)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각주:2]

 

 

 

2.2차세계대전 이후의 아프리카

-세계 질서의 다원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열강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유지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우며 식민지 유지를 반대했다. 이에 따라 전후 20년간 아시아에서 20개국 아프리카에서 33개국이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를 표방한 신생 독립 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70년대 초에는 합쳐 70여개국이 넘었다. 이들 국가는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였으며, 빈곤한 개발도상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미소 양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3세계, 또는 비동맹 국가라고 부른다.  

 

 이집트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1952)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1956)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끌여들어 이집트를 공격하기도 했으나(제2차 중동전쟁) 국제 연합의 결의에 따라 철수했다. 이들 주변의 아랍문화권 나라 리비아(1951), 모로코(1956), 알제리(1962)등은 일찍이 독립을 달성했다.

뒤이어 1957년 가나가 독립한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린 1960년에만 17개 독립 국가가 생겼다. 이런 기세로 1963년 아프리카통일기구(OAU)가 조직되었다.

모잠비크와 앙골라는(1974~1975)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포르투갈이 이들 식민지를 본국의 연장이라고 주장하며 독립을 강력하게 억제해 뒤늦게 독립했다.

리비아는 1969년 극단주의적 민족주의자인 카다피가 정권을 잡고 독재를 행했는데 국제적 테러를 자행해 미국의 폭격을 받았다. 2011년에 반독재 시위가 일어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국가위원회 정부가 출범되어 활동중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는 에스파냐가 광석자원이 풍부한 서부 사하라를 포기하자 이의 병합을 원하는 토착민세력과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치뤘다. 1988년 UN과 OAU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1990년대에도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제3세계의 5개국(인도,미얀마,인도네시아,파키스탄,실론)은 1954년 콜롬보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평화 공존의 5원칙을 제시했다.

다음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반둥에서 열린 반둥 회의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29개국 독립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평화 10원칙을 발표하고  상호 경제 협력을 체결했다.

점점 이들 국가의 수가 증가하면서 제2차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1957)때에는 40여개국이 참가하고, 제 4 차 회의(1973)에는 73개국이 참가했다.

또한 현대의 세계화와 지역화의 흐름은 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으로 세계의 각국은 지역별로 경제 블록을 형성했는데 아프리카에서도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 1969. 남아공, 보츠와나, 레소토, 나미비아, 스와질랜드)가 결성되었다.

 

3.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현대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내전이 일어났으며 아직도 진행중인 곳이 많다. 열강의 이간질적 식민 통치 및 지리와 환경 및 2000개가 넘는 부족, 800개가 넘는 언어 등 다원성을 무시한별 생각없이 자로 나눈듯한 국경선 분리에 대한 휴우증, 이슬람 극단주의의와 기독교의 대립같은 종교, 백인과 흑인이나 토착 종족간이라는 인종같은 사회 통합의 실패, 자원 문제로 갈등을 일으켜 발생했다. 또한 독립 후에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1인독재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자체적인 노력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제 연합(UN)산하의 국제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는 등 해결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르완다에서는 1990년대 후투 족과 투치 족간의 분쟁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되었고,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벨기에가 통치하던 지역이였는데, 벨기에가 소수의 투치 족 지주가 다수의 후투족 영세농을 지배하도록 했던 것이 원인이다. 이후 1962년 르완다가 독립하면서 다수의 후투 족이 집권해 두 종족간의 분쟁이 반복되었다.

 

수단에서는 2003년 초 다르푸르 지역을 중심으로 북부 아랍계와 남부의 흑인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영국은 수단을 통치할때 북부 아랍계에게 정경권을 집중시켰고, 서남부의 흑인을 소외시켰는데 독립 후에도 이런 구조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오의 전쟁, 우간다 내전, 벨기에령 콩고인 자이레의 내전, 나이지리아의 내전, 짐바브웨의 내전끝에 얻은 독립(1980) 등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남아공은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으로인해 월드컵 대회 및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나라일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다. 아파르트 헤이트는 사람을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 등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공공장소 출입과 편의시설 이용부터 교육, 주민등록, 거주 지역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이다.

1990년 국민당 정부(백인 정부) 구속 중인 만델라는 석방하고 4년만에 다인종 선거에서 승리해 백인 통치는 막을 내렸으며, 만델라가 이끄는 민족 회의는 수십 년 동안 인종 갈등을 치유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해결책중 하나로 적극적인 과거사정리를 실시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참고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흐름은 국가간의 빈부 격차도 확대시켰으며, 아프리카에는 가난과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 기아, 질병의 문제가 심각하게 퍼져있어 이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그림 4- 세계의 분쟁 지도

그림 5 - 세계의 기아 지도 아.. 아프리카여..  와중에 북한이 눈에 띈다. 전쟁, 기아... 남얘기가 아니다

  1. 세계사 교학사에 있는 그림. 근데 다른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더 보기 쉬웠는데... 왜 현직학교교사만 교과서를 공유해주는거냐. ㅡ.ㅡ 빡침 [본문으로]
  2. 특히 카이로 선언에서 적당한 시기에 라고 하는 내용때문에 우리나라의 독립후 소련군과 미군정이 진주해 신탁통치안을 제시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얄타 회담은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을 결정한 내용, 포츠담 회담은 카이로 선언의 내용을 재확인 한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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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5. 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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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몬테소리의 생애

 

몬테소리는 이탈리아 로마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로 정신박약아를 치료하면서 교육 문제에 인식했다. 이후 어린이 집에서 아동교육에 적용된 과학적 교육방법, 몬테소리 교육법 등으로 책을 출판했다.

 

2.아동관

몬테소리는 아동을 무한한 잠재능력을 지닌 존재로 보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잠재능력을 전개해 나간다고 보았다. 또한 선천적으로 특유한 정신적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성인에 의해 배우기보다는 아동 자신이 스스로 환경과 접하면서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아동은 성인의 축소형이 아니면 그렇게 취급되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즉 이러한 관점을 토대로 유아의 특성을 제시했는데,

유아는 주변 환경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하면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흡수정신을 가지고 있다.

유아기는 흡수정신이 왕성하게 나타나는 민감기이다.

유아는 스스로의 힘에 자기 교육을 이룩한다.

유아는 자기교육은 준비된 환경을 필요로 한다.

 

3. 교육관

몬테소리는 어린이의 전인적 성장, 주변환경에 적응, 인간적인 관계에서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이고 정상화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상화(namalization)이론은 어린이가 작업에 진정한 흥미를 가지고 만족감을 느낌으로써 자신의 내적 훈련과 자신감을 발달시키고 목적 지향적인 작업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즉 그러므로 작업의 중시와 작업에 쓰이는 교구를 중시했다.

한편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 교사를 director로 표현하며 어린이의 심리적 활동과 신체적 발달을 지도하는 일을 해야 하나 아동이 작업에 집중하면 방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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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프뢰벨의 생애와 업적

프뢰벨은 독일의 교육학자로 유치원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프뢰벨이 유아교육에 끼친 영향력은 지대해서 영어권에서도 유아교육에 대한 용어는 독일어로 된 용어들이 많이 쓰인다.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모범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도중 교직에 평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뢰벨은 국가가 모든 아동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위해 1816년 보편적 독일 교육기관을 설립해 교육활동을 본격화했다.이후 1846년 세계 최초의 유치원을 열었고 이후 유치원 교육의 원리와 방법을 연구했다.

주요 저서로는 교육관을 바탕으로 교육계획에 대한 포부를 세운 『인간교육론』(1826), 유치원 설립 3년후에 발간한『엄마와 아기의 노래』(1829)가 있다.

 

2.프뢰벨 교육사상의 기초

(1)만유재신론

프뢰벨은 페스탈로치의 영향, 독일 낭만주의,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만물에 신의 본성이 깃들어 있는 만유재신론을 내세웠다. 신은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에 존재하고 만물을 소생시키며 만물을 지배한다. 신은 만물의 내부에 있으며 신성이 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지니고 있어 자기 활동을 하며 자기를 완성해 나간다고 주장했다.

 

(2)통일의 원리

만물은 하나의 개체이기도 하지만 신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 창조한 만물은 신성에 의해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며, 모든 개체는 보다 높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통일성을 이루며 존재하게 된다. 

 

3.프뢰벨의 교육목적

(1)일차적 목적

일차적 목적은 인간 내부에 있는 신성인 진,선,미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며 

(2)이차적 목적

인간의 타고난 신성을 조화롭게 발달시키게 되면 신성의 보다 높은 차원인 사회와 조화를 이루게 되며 나아가서는 신과 통일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인류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4.교육의 원리

 

(1)통일의 원리

범신론에 기초해 만물의 사명을 자기 내부의 신성을 외부에 표현하는 것이라 하였으므로 교육은 만물을 절대자와의 통일까지 발전시키는 것

(2)자기활동의 원리: 프뢰벨은 아동의 자기활동을 신성의 표현으로 보고 창조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교육은 아동이 자신의 의지와 흥미에 따라 본성을 표현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3)놀이의 원리: 놀이란 아이들이 자기의 내적 세계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 아동기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산물이며 인간생활 전체의 모범이라고 보았다. 놀이를 통해 감각은 물론 정신과 감정의 도야를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교사는 놀이에 의해 어린이의 흥미와 동기를 유발시키고 창의적인 정신을 촉진하며, 협동적인 사회관계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4)은물의 개발

은물은 부모나 하느님이 주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단순한 놀이 기구가 아닌 철학적 의미를 갖는 교육용 장난감을 말한다. 은물은 아동의 발단단계별로 계열화 되어 있다. 처음 것은 털실로 된 공, 둘째는 나무로 만든 구, 6면체 원통, 셋째는 8개의 작은 6면체로 된 나무 6면체, 넷째는 6면체를 여러 개로 나누어 나이가 든 아동들이 그 형태를 여러 가지로 바꾸어 비교할 수 있게 되어 있다.

(5)노작의 원리

프뢰벨은 노작을 인간생명의 창조적이며 본질적인 활동으로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으로 보았다. 신성을 간직하고 있는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적 본질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유아의 당순한 생명활동을 위시하여 삶을 위한 모든 활동과정이 노작의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6)연속적 발달의 원리

인간의 생활이나 성장은 각 단계에 있어서 끊임없는 연속과 계속이므로, 단절이나 비약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초기 단계인 유아기가 중요하며, 현재 교육은 장래 생활의 준비가 아닌 현재의 자기 발달에 충실한 것이 되어야 한다.

 

5.프뢰벨 교육론의 특징

(1)현재의 발달을 위한 교육

프뢰벨은 인간 발달의 원리를 통해서 아동의 현재 교육이 장래 생활의 준비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기 발달에 충실한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2)유아교육의 강조

프뢰벨은 인간 발달에 있어서 가장 발달의 양이 많은 유아기의 발달이 충족되어야 그 다음의 단계가 발전할 수 있으므로 유아기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론을 전개한 프뢰벨은 세계 최초로 유치원을 만들어 자신의 이론을 실천하려 했다.

 

프뢰벨의 사상에서는 기초적인 만유재신론과 통일의 원리와 함께 유아교육을 강조한다는 것을 생각해 아동 중심적이고, 놀이, 노작교육을 주장했고 따라서 은물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을 상기해야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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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3. 4. 3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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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헤르바르트의 생애

1776년 니더작센주 출생. 헤르바르트는 대학에 교육학과를 창설해 근대적 학문으로의 교육학을 체계화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피히테와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교사훈련과 교수법의 실험을 위한 실습학교를 설치해 최초로 대학부속학교의 효시를 이루었다.  그는 교육학을 철학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했으며 윤리학과 심리학을 기초로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의 과학적 교육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대표적 저서로 『일반교육학』(1806)과 『교육학 강의 개요』(1835)가 있다.

헤르바르트는 교육목적을 윤리학에서, 교육방법의 원리는 심리학에서 구하고자 했다.(2개의 기초학) 덕성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가치이므로 아동이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릴 수 있도록 깨닫게 해주는 도덕적 품성 도야를(1목적) 교육목적으로 삼았다. 이러한 도덕성은 다섯가지 이념이 서로 결합해 이룬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5도념이라고 한다.

5도념

1.내면적 자유의 이념:도덕성의 근본 이념으로 선이라고 판단한 것을 내면적 의지에 의해 실천에 옮기고 생각한 것에 충실하는 것. 자신의 통찰과 의지가 일치하는 사람은 내면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2.완전성의 이념 : 의지가 충실하게 조화를 이루어 완전한 상태가 되게 하는 것. 강인한 의지가 나약한 의지보다 완전한 것으로 보려는 이념으로 완전성의 이념을 통해 문화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3.호의의 이념 : 타인의 행복을 원하는 것. 자신의 의지로 남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4.정의의 이념 : 다른 의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 다른 사람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5.공정성의 이념 : 의지의 결과로 생긴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2.교육방법(3방법)

(1)관리

아동들이 정숙, 근면, 청결등의 습관을 갖게 하는 등 학습준비를 하게 하는 작용으로 교수의 예비적 단계를 말한다. 적극적 관리는 아동에게 일정한 과업을 주어 활동시키는 것이며 소극적 관리는 감시 명령 금지 처벌 등에 의해 학습의 준비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2)훈육(훈련)
교재를 매개로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아동의 정조를 도야하여 도덕적 품성을 기르고자 하는 교육활동. 교훈 모범 상벌이 있으며 이중 교사의 모범이 가장 중요하다.

(3)교수

교육의 목적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개인의 사고를 형성하고 감정과 의지를 일으키고, 도덕적 품성을 육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교육적 교수는 지식과 기능의 전달에만 그치지 않고 흥미를 통해 의지를 도야를 통해 도덕적 품성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교육적 교수는 단순지식기능의 전달에 그치는 것.

(4)교육적 교수의 조건

교육적 교수의 일차적 조건으로 흥미유발을 들고, 흥미의 조건으로는 지속성, 광범위한 주제에 걸치는 다방면의 흥미일 것. 흥미들이 조화롭게 통합될 것을 제시하고 있다.

 

3.표상심리학과 학습(통각이론)

헤르바르트는 표상(관념)이 인간의 인식구조에 어떻게 결합되는지(인식의 과정)를 심리학적 근거를 통해 해명하는데 이를 표상심리학이라고 한다.

헤르바르트는 인간의 마음을 표상(관념)의 결합체로 보았다. 그래서 새로운 표상이 학습대상으로 제시되면 그 표상은 이미 가지고 있는 덩어리와의 관계에서 파악된다. 기존의 표상들과 새로운 표상이 조화를 이룰 때 쾌감이 생기게 되고, 갈등을 이룰때는 불쾌감이 생긴다. 표상이 조화를 이루어 쾌감이 생기면 흥미가 일어나고 흥미는 욕망을, 욕망은 의지를 인도한다. 기존의 표상과 조화를 이뤄 흥미를 유발하는 표상은 기존의 표상들과 결합하게 되는게 이것이 통각이며 학습이다. 그러므로 가르치고자 하는 학습은 기존의 관념과 연계되며 흥미를 유발시켜야 한다.

 

이러한 흥미는 순간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런 외적인 흥미가 아닌 모든 심각한 활동에 수반되는 깊은 흥미, 살아있는 흥미이다. 이러한 흥미는 특정대상에 주의를 기울일 때 수반되는 특별한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학습자의 자발적 활동을 이끌어낸다.

흥미의 종류로 경험적(사물을 경험하는 흥미) 사변적(사물의 관계를 구명하는 흥미), 심미적 (가치결정에 관한 흥미), 동정적(남의 고락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흥미), 사회적(국가와 사회에 흥미), 종교적(신에 대한 흥미)의 여섯가지가 있다. (6흥미)

 

흥미는 전심과 치사라는 두 단계의 정신작용에 의해 생긴다. 전심은 일정 대상에 몰입되어 명확한 관념을 파악하는 것, 즉 일정한 대상에 몰입하면 다른 대상은 의식에서 배제되는 상태이다. 치사는 파악된 개개의 표상(관념)을 통합해 통일시키는 상태로  전심을 통해 얻은 대상을 반성에 의해 통일하는 것. 

 

4.교수 4단계와 적용

교수가 다방면의 흥미를 유발하고 통합시키기 위해서는 교수방법을 체계적으로 배열해야 한다. 헤르바르트는 전심과 치사를 적용해 다음과 같은 4단계의 교수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이후 헤르바르트 학파의 T. Ziller, W. Rein이 5단계로 수정했다. 예비-제시-비교-개괄-응용의 단계)

 

(1)명료(정지적 전심의 단계)

학습자가 세분화된 공부 대상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단계

(2)연합(동적인 전심의 단계)

새로운 주제를 이전에 배운 것들과 관련지어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단계

(3)체계(정지적 치사의 단계)

새로이 배운 내용의 구성요소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기존의 지식과 관념체계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도록 하는 단계

(4)방법 (동적인 치사의 단계)

새로 얻은 지식과 주제를 활용해 새로운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연습의 과정이며, 새로운 내용을 제대로 배웠는가를 화인하기 위한 과정, 예컨대, 수학규칙이 확인되고 나면(체계), 그 지식을 새로운 연습문제에서 연습해 본다(적용)

 

5.헤르바르트의 교육사적 의의

헤르바르트는 체계쩍이고 과학적인 교육학에서 교수의 흥미와 훈련의 개념과 체계적인 4단계 교수법을 도입했다. 교육학에 표상심리학을 도입해 주지주의에 치중했기 때문에 자연 신체훈련과 실용지식을 소홀히 했다.

 

 

헤르바르트는 5도념에 기초한 인간의 도덕성의 함양을 목적으로 표상심리학을 이용해 학습의 과정을 설명했으며, 이에 대해 교수 4단계를 적용해 방법을 체계화 시켰다. 특히 학습이 일어나는 주요한 기제로 흥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단순한 외적인 흥미가 아닌 지속성, 광범위한 범위, 흥미의 조화로운 통합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오늘날의 심리학에서 보는 내용하고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듯 하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서의 동화와 조절이나 칙센트미하이교수의 플로우같은 개념하고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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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13. 4. 3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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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夷模無子, 淫灌奴部, 生子名位宮. 伊夷模死, 立以爲王, 今句麗王宮是也. 其曾祖名宮, 生能開目視, 其國人惡之. ……(中略)…… 及長大, 果凶虐, 數寇鈔, 國見殘破. 今王生墮地, ……(中略)…… 亦能開目視人. 句麗呼相似爲位, 似其祖, 故名之爲位宮. 位宮有力勇, ……(中略)…… 便鞍馬, 善獵射.

 

삼국지 권30 오환선비동이전에서 발췌

 

 

해석: 이이모는 아들이 없었다. 관노부와 음해(사적으로 통했다라고 보면될듯 -.-) 아들을 낳아 위궁이라 이름지었다. 이이모가 죽어서 왕으로 즉위하니 지금 고구려왕 궁이다. 그 증조 이름이 궁이다,  태어나 눈이 열려 볼수 있었으니, 그 국인들이 증오했다. (중략) 그가 장대해진 다음 흉학해져 여러차례 침략했으니 나라가 잔피된 것으로 보인다. (중략) 역시 눈이 열려 볼수 있었으니. 구려에서는 서로 닮은 것을 위라고 부르니, 그것이 조부와 비슷했다. 그러므로 위궁이라 지었다. 위궁은 용력이 있었다. (중략) 말을 잘 타고 사냥을 잘했다.

 

위 내용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내용이다 위와 비슷한 내용이 삼국사기 고구려전에도 나온다. 이이모는 태조왕을 이야기 하며 관노부와 통해 낳은 아들 위궁이 동천왕으로 보인다. 태조왕이 왕조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왕조를 개창했다는 의미로 여겨지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은 동명왕이 시조로 알고 있다. 이는 태조왕때부터 왕의 방계가 즉위 했다던가, 왕을 배출하는 소속 부가 변했다는 등의 견해가 있으며. 이에 대한 내용이 소수림왕대 호적이 정리(?)되기 까지 왕조의 개창자가 태조왕이었다가(적어도 동천왕대는 확실한 것으로 보이나 그 이후의 왕들은 추측) 소수림왕 대에 이르러 정리되면서 동명왕 아래의 4명 왕도 호적(?)에 넣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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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의 목적을 밝히는 것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교과적 차원의 논의로 역사교육의 가치 정당화이다. 이는 역사교육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일반적이고 추상적이며 포괄적으로 논의된다. 둘째는 내용 선정과 조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교육의 목표를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제시한 것이다. 전자를 목적론, 후자를 목표론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역사교육 개론서중 하나인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법』(최상훈 외 공저, 2007)에서도 목적과 목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목적에 대한 논의는 논란의 여지가 많으므로 일반적인 목적을 다섯가지를 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그중에서 특히 다섯번째 목적인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에 대해서는 하위개념까지 좀 더 설명했는데 이는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의 개념이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기존 역사와 대비되는 '역사교육'자체의 목적을 설정하는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각주:1]

 

1.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한 논의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해 우리의 역사교육은 파행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방 후에야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당연히 그와함께 역사를 왜 배우는가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한 논의는 시대와 주체에 따라 각각 다른 방향에서 논의되어 왔다. 우리나라 역사교육 논의의 특징은 역사교육의 교과 외적인 영향력이 많이 있는 상태에서 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의 역사교육에 대한 논의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보다는 "어떻게 역사를 배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였다. 역사교육에 대한 당위성을 전제로 한 채의 논의들이 많이 진행되었다. 시대적으로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없듯이 여겨졌다. 당연히 역사교육의 정당화에 관한 논의도 적게 이루어졌다. 즉 역사관 혹은 역사적 태도의 검토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이후에 들어 구성주의적 관점, 수요자 중심의 교육 등 다양한 관점과 역사교육의 위상 변화와 함께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의가 전개되었다. 즉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도 학자간의 차이가 있다.[각주:2]

이인호 교수는 바람직한 인간성 함양과 정신적 공감의 확대를, 정현백 교수는 역사의 사회비판적 기능을 중시하고 인간해방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논쟁으로 교육의 일반 목적과 역사교육의 교과적 목적과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있다. 리와 화이트의 논쟁이 있다. 화이트는 학교 교과로의 역사는 민주 시민의 덕목을 기르는 교육의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며, 리는  역사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는 리가 주장하는 역사의 고유한 변형적 목적도 개인이 속한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역사교육 목적론의 허실

역사교육계에서는 이러한 목적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양호환은 '역사교육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비판하면서 역사교과의 가치를 정당화 하는 작업이 실제 학교 역사교육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검토했다. 

양호화은 먼저 목적론에 대해

1.역사교육의 문제를 논의하는 출발점으로 여겨지고 있고.-목적을 정한다고 해서 가르칠 내용이 정해지는 것이 아닌데 목적을 정하면 해결될 것처럼 논의하는 것. 

2. 교육과정 혹은 교육방법적 측면에서 역사교육의 의의나 전통적인 역사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을때 이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등장했으며

3. 교사의 역할이 배제된채 논의되고 있다.

결국 현재 역사교육의 목적은 실질없이 본질화- 실체가 없는데 목적을 규명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된것- 되어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역사교육의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대해 먼저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다. 구체적인 이유로는

1.역사교육 문제와 해결을 목적론으로 단순화 하는 견해에 대해 역사교육의 목적을 정한다고 가르칠 내용이 자동으로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  

2.현재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역사교육의 목적을 정하는 절차와 방식 속에 역사교육의 내용을 하향식으로 결정하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고, 이 구도하에서 현장과 교사는 배제된다. 또한 목적 위주의 사고방식은 상황과 맥락의 개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획일적 구도로 역사 학습을 예상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주체적인 입장이 아닌 전달자로서 대상화 되버린다는 것이다.

3.이해 당사자를 배격하면서 '중립성 확보'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현재 교육과정 논의 구도속에서는 역사교과의 가치를 정당화하고 역사교과의 위상강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즉 현행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교과의 가치를 정당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교과의 위치 강화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은 현실화가 어렵다는 말. 현행 교육과정은 교과의 비중을 정하는 것은 교육 과정 연구자이며 이들의 견해가 크게 반영되는 구도에서 역사 교과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것은 '영역 이기주의'일 뿐이라는 것.  

그러므로 결론은 역사교육의 목적 설정 논의를 좀 더 실질화시켜 쟁론의 과정이 되게 하고,[각주:3] 교사가 가르칠 내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재량과 범주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교과 외적인 영향이 큰 역사교과의 특성상 외부 압력에 대응하는 성격을 지니는 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진행되는 논의의 권력구조나 담론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환기시켰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일차적으로 역사교육의 위기가 등장하게 된 논의 구도 자체에 대한 검토와 통합사회과측의 논리의 부당성을 항목별로 따지면서 사회과 통합 논리에 대응함과 동시에 교과교육 이론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는 '역사적 사고'를 필두로 다양한 개념들이 등장해 역사교과의 특수성과 정당성에 대해서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역사교육의 목적이 역사의 목적과 관련되어 있지만 역사교육만의 고유한 영역과도 관련되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개론서인 『역사교육의 내용과 방법』에서 역사교육의 목적에 대해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다.

①교훈의 획득 : 역사는 유용하다고 보고 과거의 사례를 통해 현재 닥친 일에 합리적인 판단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역사는 일회성이나 특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사례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고,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과 지배층 중심 위주의 역사서술에 대한 위험성 제고, 과거 사건에 대한 관점이나 평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반박이 있다.

 

②유산의 전승 : 한 사회가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구성원의 동질감과 정체성이 필요하다.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공통의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다. 공동 유산의 전수를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사회적 또는 정치적, 실용적 목적을 위해 과거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관점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③현재의 이해 : 역사적 사실의 습득을 통해 현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는다는 점이다. 현재 현상의 이해하는데(원인을 알려는 등) 현상의 과거 혹은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재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

현재의 이해에 대한 견해에는 현재의 특정 문제가 과거의 어떤 역사적 사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워 막연한 관련성만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 비판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회과학적 방법론보다 다양한 각도,  비판적으로  파악하는데 역사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④인격과 교양의 육성

... 고매한 인격과 풍부한 교양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이런 자화자찬.....ㅋ.ㅋ) 이 견해는 실용주의적 가치관에게 엘리트적 역사관이라 비판받았으나 오늘날에는 역사도 일반인의 관심사이며, 보통 사람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되는 상황에 역사가 엘리트의 학문이라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⑤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

역사교육의 목적으로 외적인 기능이 아닌 자체적인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을 들 수 있다. 역사의식은 역사에 대한 견해, 사상, 느낌, 감정을 가리키는 용어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역사적 사고력은 어떤 문제나 상황에 처했을때 역사학의 특성에 근거해서 생각하는 능력을 일컫는데 이또한 다양하게 정의된다. 굳이 둘의 차이는 역사의식은 역사가 무엇인지, 역사 문제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견해를 의미하는데, 역사적 사고력은 역사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정신활동이라는 차이가 있다.

 

 

 

  1. 그러므로 목적에 대해서 생각할때 역사교육의 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역사교육"자체의 목적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는것. 그래야 '역사교육" 자체의 가치, 혹은 정당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파팅톤(Geoffrey Partington)이 제시한 전통적인 역사교육의 목적 ①문화유산의 전승 ②도덕 교육 ③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해의 증진. - 파팅톤은 이러한 견해가 선험적 전제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 것인지,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엔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역사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 역사를 배운다는 사고 과정이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본문으로]
  3. 읽으면서 이부분이 이해하기 좀 어려운데 일단은 단순하게 목적은 목표를 결정하고 목표는 구체적인 실행 방법들에 대해서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목적을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것이 아닌 하위 개념으로 나누어 쟁론화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라는 식으로 이해했다. 목적의 쟁론화를 통한 다양화는 실제 현장의 가르치는 방법의 다양화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즉 역사교육의 목적을 역사적 사고력의 함양이다. 라고 주장했을때 이에 관해 주장에 대한 비판 혹은, 하위개념의 제시등으로 담론을 형성해 쟁론화 해야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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