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2013. 4. 16. 22:22
728x90

三十五年夏六月 遣使入唐賀正 仍附表陳謝 曰 伏奉恩勑 賜浿江以南地境 臣生居海裔 沐化聖朝 雖丹素爲心 而功無可効 以忠貞爲事 而勞不足賞 陛下降雨露之恩 發日月之詔 錫臣土境  廣臣邑居 遂使墾闢有期 農桑得所 臣奉絲綸之旨 荷榮寵之深粉骨麋  身無由上荅 , (성덕왕 35년)

遣阿湌 貞節 䓁檢察北邉始置大谷城等十四郡縣 ( 경덕왕 7년)

二十一年夏五月築五谷鵂巖漢城獐塞池城徳谷六城各置太守 (경덕왕 21년)

 

『삼국사기』,[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해석:

1) 성덕왕 35년 여름 6월 사신을 당에 파견해 새해 인사를 올리고 표를 올려 사례해 말하길 엎드려 패강이남지역땅을 하사한다는 은혜로운 칙서를 받듭니다 신은 바다건너 변방에 살며 성조를 입었으나 비록 충성된 마음을 먹기는 하였으나  본받을만한 공적은 없었으며 충절로 일을 삼았으나 항상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폐하의 우로같은 은덕을 받고 일월의 조를 발해 신의 영토에 새기고 넓은 고을에 살게 되었으니 간벽할 시간을 따르게 되었고, 농상할수 있는 장소를 얻었습니다. 신은 명령을 받드니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2)아찬 정절등으로 하여금 북쪽 변방을 검찰하고 대곡성등 십사군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3)21년여름5월 오곡 휴암 한성 장새 지성 덕곡 여섯 성을쌓고 각각 태수를 두었다.

 

1번은 성덕왕대에 당나라와 발해말갈정벌에 나섰을때 별 소득이 없었지만[각주:1] 당에서 그에 대한 대가로 패강 이남의 땅을 사사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를 올린 상황을 서술했다. 패강은 지금의 대동강이다. (후에 패강진이 개성부근을 말하는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고 삼국유사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1)성덕왕(제위 702~737)과 그의 치적

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형인 효소왕과 어머니가 같다. 즉위시 효소왕이 아들이 없어 화백회의에서 회의를 거쳐 왕위에 올랐다. 성덕왕대는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 성덕왕으로 이어지는 신라 중대 왕권강화의 흐름에서 가장 최정점에 올라있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강력해진 왕권을 기반으로 많은 정책을 실시했다.

신라 중대에는 집사부의 기능이 강화되어 중시(경덕왕대 시중으로 변경됨)의 권력이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대등의 제도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단지 중대에는 상대등이 왕권을 옹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중대의 왕권은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덕왕 제위기에는 활발한 대외 관계활동이 두드러진다. 제위기간중 46회의 견당사를 보냈으며 중국에 많은 유학생을 보냈으며, 732년 발해의 등주 침입으로 이은 733년 발해 원정에 참여함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반대로 일본과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735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왕성국이라 칭하며 높아진 자존감을 나타냈으며, 이에 일본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원정론까지 나오게 된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호국불교적인 입장을 취했다. 성덕왕은 전광대왕이라는 불교식 왕명을 가진 중대의 유일한 왕이었다. 봉덕사를 건립해 무열왕을 추복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했다.

또한 유교적 예제의 정비와 국가불교도 고취하였다. 717년 당에서 귀국한 김수충(金守忠)이 공자 이하 10철과 72제자의 도상을 가져오자 왕은 이를 국학에 안치토록 조치하였다. 또한 718년에는 누각전(漏刻典)을 설치하였고, 721년에는 내성 기구 속에 소내학생(所內學生)을 두어 장차 문한계통에서 종사할 요원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제도정비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교적 예의에 입각하여 각종 예제를 정비한 것이다. 유교사상과 의례를 강화함으로써 가까스로 확보한 평화를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2)신라의 지방통치제도

(1)통일 이전

초기엔  왕경을 6부(급량, 사량, 본피 모량, 한시?, 습비?)로 편제한것이며 이는 종래 부족적 전통을 행정적 조직으로 개편한 것으로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왕경인은 17관등의 경위를 보유했다. 이 시기까지는 족제적 전통이 남아 있었으며  지방외위와 경위가 구별되었다.  지방의 촌주 등은 외위를 갖게 되는 것. 또한 지방에 소경과 주 군 촌의 제도를 설치 실시했다.

①소경

소경은 왕경을 모방한 지방의 특수행정구역으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의 성격이 강하였다. 소경의 장관을 사신(사대등)이라 불렀다. 소경은 514년(지증왕15)에 아호촌에 처음 설치하고, 557년(진흥왕 18)년 국원에, 639년(선덕여왕 8) 하슬라에 설치했다.

②주

주의 장관은 군주라 칭했고 주치도 군략상의 필요에 따라 이동해 신라의 주가 행정구획보다는 군사적 성격을 띠었음을 알 수 있다.

주는 505년(지증왕6)에 처음으로 실직주를 두었고 진흥왕대까지(540~576) 사벌주, 신주, 비사벌주, 비례홀주를 합하여 5주가 성립 되었다.

③군

주 밑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 당주가 파견되었다.

④촌(성)

군 밑에 속한 행정구역으로 도사가 파견되었다. 군과 촌도 군사적 성격이 강한 행정구역이다.

 

2)통일 이후의 지방행정의 정비

 

 

 

그림 9주 5소경 - 출처 7차교육과정 국사교과서

685년(신문왕5)에 9주 5소경의 지방제도를 마련했다. - 이는 통일전 신라의 5주를 바탕으로 백제와 가야지역에 4주를 설치하여 9주로 만들고, 새로 편입된 고구려의 옛 땅을 북방의 주에 포함시킨 것.

통일전 국원소경, 북원소경, 금관소경 설치되었으나 신문왕대 서원소경,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경덕왕때 국원소경이 중원소경으로 개칭되었다. 이는 수도인 경주가 지방에 치우쳐 있음을 보완하고 지방세력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소경에는 사민정책을 실시해 귀족들을 이주시켜 살게했다. 신라의 5소경은 행정구획의 의미보다 정치적 또는 문화적 필요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주의 장관은 661년(문무왕1) 군주에서 총관으로 고쳐지고 785년(원성왕1)에 다시 도독으로 개칭되는데 당제를 모방해 종래의 군사적인 성격에서 민정장관의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주 밑에 군과 현을 설치했는데(성덕왕) 통일전의 군과 촌을 개편한 것으로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120군 350현으로 나왔다. 군의 장관으로 태수가 임명되고 현에는 현령과 소수가 있었으며, 주와 군에 감찰의 임무를 가진 외사정이 설치되었다.

주군현에는 토착인으로 리를 임명해 외관을 보좌하도록 했는데 토착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을 상경시켜 관부의 일을 보게 하는 상수리제도를 마련했다.

주군현 밑에는 촌이라는 행정구역이 잇었는데 자연촌과 행정촌이 있었다. 행정촌은 지방의 토착인 유력자를 촌주로 삼아 자치케 했는데 이들은 현령의 통제를 받았다

 

특수 행정조직으로 부곡이 있는데 소국의 정복과정에서 이루어진 피정복자 집단이나 전쟁포로의 집단거주지를 의미한다. 주민은 천민이다.

  1. 이때 발해는 제2대 무왕(719~727)의 집권 시기로 활발한 대외 진출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당이 흑수부말갈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장사라는 관리를 보내 통치하려 하자 무왕은 장문휴로 하여금 산동성 등주를 공격해 등주자사를 죽였다(732), 이때 당은 신라와 발해를 공격했지만 추위와 눈으로 소득 없이 물러났다(733) [본문으로]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카테고리 없음2013. 4. 16. 11:58
728x90

1.의미 및 전개

포스트 모더니즘은 1950년대 아놀드 토인비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이며 1960년대 활발하게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학문적으로는 1979년 리오타르에 의해 학술적 용어로 사용되어 등장했다. 이때 하버마스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속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문학, 건축, 미술, 등의 예술을 비롯해 철학, 미학, 사회학, 정치학 등 학문 분야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기본적인 인식체계의 변화 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탈 이데올로기 사회, 후기자본주의 소비사회, 디지털영상 정보화 사회, 신 중간계급 사회, 신과학 사회의 새로운 특징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시대사조 혹은 문화논리를 일컫는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 모더니티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사조들을 싸잡아 부르는 말 철학에 실체가 있다고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딱 무엇이다 라고 부르기도 뭐한 광범위한 사조)

이는 계몽사상으로 대표되는 근대사회의 보편적, 합리적, 절대적, 객관적 총체적 비판을 지향한다.

 

대표적으로 후기 구조주의자인 리오타르, 데리다 , 푸코 등으로 시작해 정신분석학 분야의 라캉 들뢰즈 정치철학 분야의 마르쿠제, 장 보드리야르, 과학철학의 토마스 쿤 문학이론의 롤랑 바르트 등이 있다.

 

3.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

(1)반정초주의

지식이나 인간 인식에 있어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본질(기초)가 존재한다는 근대철학의 기본 가정과 신념을 비판하고 배격한다. 이는 서양의 근대적 정신과 학문적 방법의 객관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종식을 의미한다.

 

(2)반합리주의,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의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정한다. 근대사회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인을 추구하였으나 인간의 자아란 우연적 타율적 분열적 모순적이므로 결코 합리적 사고의 행동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은 결코 합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원론적 사고를 강조하는 입장과도 일맥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이 이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은 현실세계라는 한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다양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자 한다.

 

(3) 상대적 인식론

지식의 보편성과 객관성 부정: 이러한 사고는 지식에 대한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의 인식을 통해 형성되는 지식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지식은 어느 것이나 역사성과 사회성을 초월한 인식의 절대적 기준을 가질 수는 없다. 보편타당한 지적 탐구활동의 기초란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인식활동은 인식자의 주관에 따른 상대적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불변의 실재와 그것에 대한 합리적 인식은 허구이며, 가능성을 전제로 한 학문적 체계는 허구이다.

 

소서사(국지이론) 지향: 또한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람,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대서사를 거부하고 개인이나 집단에 초점을 맞춘 소서사에 관심을 둔다. 그동안 무시되었던 여성 및 성차별, 빈민, 아동, 환경문제 등에도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런거 하시는 학자분들한테 미시적인 분야 한다고 하면 별로 안좋아 하는듯.. 부분으로 전체를 읽는다는 자부심이 있는듯)

(4)탈정전화

근대사회의 문화적 정전은 보편적 진리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고 정전에 부합하는 생활양식은 고급문화로 간주되어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인정, 수용, 계승하게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관점에서는 정전은 의미가 없으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 저급문화 고급문화로 나누고 고급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근대적인 시각이며 포스트모던에서는 생활방식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의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적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5)유희적 행복감과 향유

그러므로 포스트모던에서는 주체적 자아의 확립, 보편적 진리의 습득, 고급문화의 입문 등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실험적 유희적 감성적 접근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역사적 도덕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유희적 행복감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현상과 인간적 본질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근대적 사고방식(절대 객관성과 확실성, 이성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고 다원성과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모더니티에 대한 권위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하며 이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하나의 진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사회, 수많은 담론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4.포스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거칠게 말하면 모더니즘의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과 모던의 차이를 보려면 먼저 모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모더니즘

모더니즘은 데카르트 이후 전개된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가리킨다. 중세 신의 세계에서 탈피해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당연스럽게 인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펼쳤다. 실재와 진리, 객관성과 중립성, 법칙과 논리, 구조와 분석 등의 개념들이 핵심적인 근간을 이루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절대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신념체계이다.

모더니즘은 합리주의, 근대정신(이성에 의한 질서 확립), 자유인의 삶(이성에 의한 삶), 보편적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이성 등 이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사고방식을 전개했다. [각주:1]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의 시대에 공교육 제도가 확립되었다. 서구 공교육제도는 합리성, 체계성, 객관성, 조직성, 효율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보편적 가치체계를 가르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2)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의 절대성과 객관성이라는 모더니즘의 근본 전제를 부정한다. 이는 교육체계에도 영향을 미쳐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에 뿌리깊이 박혀있던 신념과 인식체계의 근거를 와해시키고 있다.

 

(3)그로 인한 교육현장의 혼란과 대안 모색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적 사고는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에 대한 권위는 부정되어 교사의 지적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식과 신념의 보편적 의미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기존 교사나 교육학자들에게 기존 교육방식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기존의 익숙한 이해 방식과 달라 혼란을 부추긴다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현실적 교육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5.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적 입장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근대적 공교육 제도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을 가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기존 교육관이 가진 학생관, 지식관,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체제의 전환을 요구했다.

(1)학생관의 전환

전통적인 교육은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들이 지식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즉 학생을 백지나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학생들의 관심, 흥미, 기호, 사유 및 행동양식 등에 깊은 관심과 주의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그들의 가진 비판적 능력과 창의성, 상상력을 신장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

(2)지식관의 전환

전통적인 지식은 실재 세계를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타당하며 진리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교과서의 형태로 조직되어 가르쳐지며 평가에서도 기본적인 준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시대의 언어게임이나 사회제도 또는 자기 관념을 영속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지식 또는 신념체계는 완전하며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과 신념체계가 우리 사회의 특수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사회적 산물임을 인식하도록 하고 이러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해 비판적으로 사고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통해 지식을 보편타당하고 유일한 것 당연히 옳은 것이 아니라 대안과 다른 사고체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발적이고 허용적인 태도를 배워야 한다. 즉 다원적 유동적인 열린 지식태도, 지식관이 요구된다.

(3)교육내용의 전환

기존의 논리적으로 인증 가능한 인지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치가 없나 적은 것으로 치부했떤 주변적 요소들(기술적 요소, 윤리적 요소, 미적인 요소)도 인지적 지식과 대으하게 다루어야 한다.

학습내용 및 경험에 대한 학생들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되며, 교과서가 정답이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적, 비판적 다원적 사고를 자극하고 주체적 문제 해결력을 길러 주는 학습자료로의 교과서가 요구된다.

(4)교육방법의 전환

일방적 전달은 학생들을 무비판, 수동, 경직성을 초래하며 학생과 일방적 관계만을 존재시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학생, 학생-학생간의 개방적 비판적 대화 토론, 협동, 자율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탐구방법이 요구된다.

학생들 간의 공동학습, 협력학습을 추구하며, 개개인을 격려하고 학습 흥미를 유발하며, 이론보다는 실제를 중시하고 토의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협력학습을 통해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게 함으로써 다원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5)교육체제의 전환

근대 공교육 제도는 필연적으로 획일성과 경직성을 띠기 마련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 적합한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체계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기존 공교육 체제 내에서 변화하는 사회를 수용 할수 있는 체제 탐색과 함께 다양한 대안교육 모델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개발해야 나가야 한다. 대안학교, 열린교육, 홈스쿨링 등

 

6.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적 영향

(1)인간의 모든 경험, 특성이 조화롭게 발달되는 전인교육의 중시

(2)인간의 지식 형성과정은 상대적이므로 그 과정을 이해하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3)개인이 지닌 가치에 따라 지식을 구성해 간다고 보기 때문에 학습자의 자발적 학습을 중시한다.

(4)인간이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공동체에 관심을 둔다.

(5)학습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한 교육을 강조해 교육이 학교를 넘어 평생교육을 강조한다.

 

7.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현상 연구에 주는 시사점

(1)교육에서의 통제 간파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공교육(학교)가 지식을 전수받는다는 이름 아래 통제가 자행되는 감옥같은 곳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갖게 했다. 푸코는 학교는 미시 권력이 작동하는 감시체제라고 했다.

(2)정체성에 관한 시사점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구 대상중의 하나는 대중의 일상적 삶과 문화, 잠재적 행동역학,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전략 및 사회적 세계에서 그들이 느끼는 점, 그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이런 문화적 배경의 분석을 통해 학생, 교사, 학부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가를 성, 인종, 종교, 나이, 일의 성격 등에 따라 탐구해볼 수 있다.

(3)지식에 관한 시사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거시적 이론을 하나의 권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적 지식관을 해체하고 비판적 인식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학교 지식에 관한 탐구에서 지식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양하게 구축되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며 절대주의적 지식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4)학생, 교사, 학부모 문화 연구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관점, 다양한 자야, 다양한 가치관을 강조하며 그에 대해 다양한 인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가치관이 난립하는 배경에서 어떻게 그들의 의견을 모을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8.포스트 모더니즘의 한계점.(김병욱)

(1)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도 어렵고 추상적인 것이 많다. 이 또한 하나의 권력체계다.

(2)보편성을 거부하기 위해 개별, 다양, 국지를 중시하다 보면 중요하게 통용되는 거시적 특성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즉 모든 현상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모던보이 같은 현상이 좋은 예)

(3)포스트모더니즘이 이성의 파기를 강조하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의 파기보다는 진정한 이성의 추구 혹은 이성의 회복이라는 점. 다양성을 포용하고 타자를 끌어안아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이성이다. (하버마스의 논리)

(4)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나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지나친 상대주의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관정립을 방해할 수도 있다.

(5)포스트모던은 이해와 인식의 상대주의를 취하지만 모든 이해와 인식이 상대적일 수만은 없다. 인간은 이성적 인지작용을 통해 보편적 판단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공통된 특성이 있다는 것)

 

9.포스트 모더니즘의 도전과 수용(이돈희)

 

(1)포스트모더니즘의 학교 지식체계에 대한 도전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당화되면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의 전통적 의미와 체계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권위 있는 이론과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 지식으로 조직된 전통적 ㄱ과구조와 그러한 지식을 생산한 탐구의 원리에 따라 개발된 교육방법은 치명적 도전을 받게 된다.

 

(2)방법으로서의 지식

학문, 예술 제도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삶의 방법'으로 이해할 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문제 해결의 도구로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사물과 현상도 설명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 지식 혹은 방법의 보편성은 문화적으로 공유한 내용으로 한정한 것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또한 지식은 상대적 개념이다. 이말은 포스트모던한 것도 전통의 틀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도 단지 하나의 지식을 대하는 방법론일 뿐. 전통적인 개념도 절대성을 잃는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공부할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업적이며 경험으로 이해하고 공부할 소재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1.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완전히 부정되지만 하버마스 같은 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다만 하버마스는 대화와 소통을 통한 이성의 사용을 전제로 했다. [본문으로]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카테고리 없음2013. 4. 16. 01:13
728x90

我國 自中世以來 奸壬用事 士禍相繼 前有戊午甲子之戮 後有己卯乙巳之殘 一時忠賢 騈死於洪流 猶未有朋堂之號 自宣廟以來 一分爲二 二分爲四 四又分爲八

 

성호이익, 『곽우록』과『성호전집』권 45 붕당론에 실려 있다.

 

 

해석: 우리나라는 중세부터 지금까지 간임용사(임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르겠음..간신이 국사를 써써라고 해석해도 될듯) 사회가 계속 끊이지 않았다. 전에는 갑오갑자의 살육이 있었고, 후에는 기묘을사의 도륙이 있었다. 한번에 충현(충신과 현신)이 모두 홍류(함께 휩쓸려)에 죽었다. 아직 붕당이라는 이름이 있지 않았으나, 선조대부터 지금까지 한개가 두개로 나눠고 두개가 네개로 나뉘고 또 네개가 여덟개로 나뉘었다.

 

 1519년 중종 14   기묘사화  

 1545년 인종 원년

  을사사화  
 1575년 선조 8   심의겸과 김효원에 의해 동서 분당

 동서 대립

 1589년 선조 22

  정여립 모반 사건  서인 집권
 1591년 선조 24   동인이 남북인으로 나뉨

 북인 집권

 1608년 광해군 원년

  대북파 정권 장악  

 1623년 인조 원년

  서인에 의한 인조 반정  

 1674년 숙종 원년

  갑인예송(2차예송)으로 남인 집권  

 1683년 숙종 9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뉨

 경술환국 직후

 1689년 숙종 15

 세자 책봉 문제로 노론 실각, 남인 집권  남인 집권

 1694년 숙종 20

 인헌왕후 복위 문제로 노론 집권

 노론 집권

 1724년 영조 원년

  영조 즉위  탕평

붕당계보도, 연표 출처 - 아틀라스 한국사 (이밖에 청남탁남 한당산당 이것저것 널리긴 했는데 이정도만 알아도 크게 문제없을듯)

 

1.붕당정치

사림은 몇차례의 사화에도 불구하고 향촌 사회에 서원과 농장 등 인적,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정계를 장악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훈구세력이 쇠퇴하면서 사림이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사림 세력은 의견이 나눠지기 시작했고 의견이 나뉨과 동시에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정치적 모임을 형성하기 시작했으니 그것이 붕당이다. 조선 초기엔 붕당은 유교적 원리에 따라 금기시하였으나, 성리학이 구양수의 붕당론을 수용하면서 조선 사회에서 붕당이 인정받고 붕당 정치가 활발하게 되었다.

 

2.붕당의 전개

1)붕당의 발생(동인과 서인, 김효원과 심의겸, 이조전랑)

최초 붕당은 1575년(선조 8) 김효원과 심의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신진 사림인 김효원의 집이 동쪽이라 동인 기성 사림인 심의겸이 집이 서쪽이라 서인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들은 하급 문반관인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이조전랑(정랑과 좌랑) 자리를 놓고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과 김효원이 경쟁한데서 발생했다.

서인과 동인의 차이는 서인은 치인에 역점을 두고 제도개혁을 통한 부국안민을 주장한 반면 동인은 수기를 통한 도덕성 제고를 역점에 두었다.

분당 초기에는 이이가 서인과 동인의 갈등을 조정해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선조 17년(1584) 이이가 죽자 유성룡, 이산해, 이발 등의 동인이 정권을 장악했다.

정여립 모반사건(기축옥사) : 그러나 선조22년 (1589)에 동인인 전주출신 정여립이 모반을 일으켯다 발각되어 다수의 동인이 처형되었다.

정철의 세자 책봉: 그러나 동인은 2년뒤인 1591년 서인 좌의정 정철이 세자 책봉을 선조에게 건의하자 동인은 이를 문제삼아 서인파를 내몰았다. 이 과정에서 서인에 대해 기축옥사 때 피해를 많이 입은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전자를 북인, 온건한 입장을 가진 이들를 남인이라고 불렀다.  

 

2)광해군대의 대북의 집권

신분(명분)의 차이 때문에 북인의 분당 : 서인 몰락 후 정치 상황이 북인이 우세한 가운데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이때 선조는 급하게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해 왜를 막게 했다. 그러나 왜란이 끝나고 인목대비가 뒤늦게 영창대군을 낳자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실리주의자)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명분주의자)으로 갈렸다. 그러나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항일전쟁을 주도한 대북이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후궁인 공빈김씨의 소생인 광해군대의 정치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계축옥사: 광해군은 붕당극복을 위해 남인도 고루 등용했다. 그러나 자신의 친형인 임해군과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에 위협을 느껴 1613년(광해군5) 인목대비를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 이를 계축옥사라 한다. 이때문에 광해군은 후대에 성리학적 법도에 어긋나는 패륜으로 불리게 된다.

1611년 급진개혁: 정인홍의 주장으로 남인의 추앙을 받던 이언적과 이황을 문묘제사에서 삭제하고 이를 반대하는 성균관 유생들을 축출한 사건은 반발을 더 크게 했다.

 

3)인조반정과 서인정권

인조반정: 1623년 김류 이귀 이괄 등 서인들은 광해군을 무력으로 몰아내고 선조의 후궁 인빈김씨 소생인 원종의 아들 능양군을 추대해 왕으로 삼았으며 폐모살제의 명분으로 광해군을 유배되고 대북파는 모두 처형되었다. 이를 인조반정이라 한다.

이괄의 난(1624): 이괄이 자기의 공로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서울까지 점령했으나 평안남도 군사에게 진압되었다. 이 난 평정후에 서인은 패도에서 왕도로 돌아서 남인파를 등용해 붕당연합을 결성했고, 광해군대의 중립정책을 버리고 친명배금정책을 실시했다. 이때 이괄의 잔당이 후금으로 도망가 인조가 부당하게 즉위했다고 호소하는 사건은 후금의 신경을 건드렸다.

정묘호란: 결국 후금의 홍타이지는 광해군을 위해 보복한다는 명분으로 1627년 쳐들어왔다.  이후 조정은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주화론자와 소장파 관인들인 주전론자로 나뉜다.

병자호란 : 결국 1636년(인조14)에 병자호란으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 청은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소현 봉림대군을 데려갔다.  후에 봉림대군이 돌아와 효종으로 즉위한다. 원래 소현세자가 왕세자였으나 그의 친청태도가 문제되어 귀국 후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이 시기 서인은 호위청, 총융청, 수어청, 정초군 등의 새로운 부대 설치를 통해 권력기반을 유지해나간다.

 

효종과 서인정권 : 효종 즉위 후에도 서인정권은 계속된다. 그러나 허목 윤선도 같은 저명한 남인 인사도 등용되어 조화를 이루었다. 효종정권대 붕당의 관계가 요동치는 정도의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4)현종대 1차 예송논쟁

1차예송:  현종 즉위시 남인들이 효종의 조대비의 복상문제를 들고 나와 서인을 공격했으나 서인이 승리했다. 이는 왕권을 강화하려는 남인과 (3년복) 신권을 강화하려는 서인 (1년복,기년복)의 대립에서 서인이 승리했다.

 

5)숙종과 환국정치

2차예송: 숙종초에 왕권강화를 주장해온 남인의 의견이 채택되어 서인이 실각하게 된다. 효종비 사망을 계기로 효종의 어머니(조대비)가 입어야 될 상복을 서인은 대공복(9개월)로 주장했고 남인은 기년복(1년)을 주장했는데 숙종이 기년복을 채택했다. (남인승리 이후 청남과 탁남으로 나뉘어 정치전개)

 

경신환국(숙종6 1680) : 허적이 역모를 꾸몄다고 하여 허적 윤휴를 사형시키고 서인이 남인을 몰아낸 사건으로 서인이 집권 이후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다. 노론은 대의명분을 중시하고 민생안정과 자치자강을, 소론은 실리와 북방개척을 주장했다. 이때 노론이 정치를 주도했다.

기사환국(숙종15 1689) : 노론이 남인계의 후궁(장희빈)이 낳은 왕자가(경종) 세자로 책봉되는 과정에서 몰락하고 남인이 집권

갑술환국(숙종20 1694) : 숙종이 폐위된 민비,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을 사사하자 노론과 소론이 다시 집권한 사건. 이후 권력이 노론과 소론 사이 왔다갔다 하는 시기가 된다.

6)영정정조대 탕평론

영조대 완론탕평: 소론의 지지를 받은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했다. 즉위직후 이인좌의 난으로 소론의 도전을 받았으나 극복하고 이 과정에서 임오화변(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임)이 일어난다. 이때 노론이 사도세자를 동정하는 시파와 임오화변을 찬성하는 벽파로 나뉘게 된다.  이후 어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온건한 세력을 등용하는 완론탕평을 실시했다.

정조대 준론탕평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겪은 정조는 당파를 꺾지 않고는 탕평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해 초월적 군주가 되어 신하를 양성하고 재교육 시키는 방향의 정책을 펼쳤다. 이를 준론탕평이라 한다.

 

각 시대별로 있었던 당파들의 정책과 정치적 전개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다뤄야 하지만 대충 흐름만 봤다.

큰것만 정리하면 동서인 분당 →정여립 모반 사건(동인처형) →정철의 선조 세자 책봉 문제(동인이 다시 복권)→임진왜란(광해군 및 대북세력 집권) → 인조반정(서인중심 남인 일부 참여) → 예송논쟁(1차 서인 2차 남인 승리)→ 경신환국(서인 승리 이후 노론소론으로 분당) →기사환국(남인 승리) →갑술환국(서인승리 남인의 완전 몰락) → 탕평론의 전개로 대충 정리될듯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15. 12:10
728x90

1.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1)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인간의 삶의 모든 수준, 즉 가장 원초적인 수준과 가장 진보적인 수준에서 작용하고 있는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인간성의 법칙을 찾고자 하는 시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법칙은 개개인의 역할보다는 전체 체계를 구성한 후에 그 체계 안에서 각각의 구성원의 관계를 구성하게 된다. 즉 개인의 행위나 인식을 규명하기 위해 그것의 기반이 되는 전체 체계와 구조를 분석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론과 실증론과는 뚜렷한 차이가 난다. 구조주의는 사회 구조와 시스템, 의미론 등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구조주의는 분야가 넓으며 통일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 철학적 사유임과 동시에 학문적 방법론이기도 하다.

 

(2)구조주의의 전개

구조주의는 소쉬르의 기호언어학에서 그 기원을 갖는다. 인간은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이 기호와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영향을 받는다. 또한 언어는 그 각각의 단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언어의 세계 속에서 다른 요소와의 관계를 통해 그 위치를 규정받는다. 이러한 논리는 구조주의의 기반을 마련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에 실존주의와 함게 구조주의가 더욱 더 각광받았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인류학 분야에서 구조주의적 사유를 전개했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기존의 제국주의의 통치를 정당화하던 인류학이 아니라, 객관주의적 사유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파괴하는 현실에 처해 인간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고자 했다. 이후 바르트, 알튀세르, 푸코 등의 학자가 주도하는 분야로 이어져 전개된다.

 

(3)구조주의의 기본입장

①주체는 구조의 산물: 구조주의는 인간의 주체성과 역사성을 내세우는 실존주의와 대립되는 사상이다. 실존주의가 인간이 스스로 선택에 의해 자신의 내용과 본질을 만들어 간다고 보는 반면 구조주의는 주체를 구조의 산물로 본다.

②보편적 구조가 존재: 인간의 언어, 사회구조, 정신 등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구조가 존재하며 개개인의 특성은 보편적인 구조에 의해 마련된 가능성을 일정하게 조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구조주의는 시간과 문화적 상황(통시성)이 아니라 상황(공시성)에 주도된다고 본다. 즉 구조는 모든 시대, 모든 상황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는 것

③연구대상: 구조주의는 연구대상을 개별적 사실보다는 사실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정되는 체제를 대상으로 한다. 사회생활에서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규정하는 심층적 구조를 밝히고자 한다. 주체보다 구조, 실체보다 관계, 내용보다 구조를 파악했다. 라캉은 무의식을 구조주의적으로 파헤쳐 주체철학에 타격을 가하고 주체를 주어진 것이 아니라 형성되는 것으로 봄으로써 현대사상의 전개에 영향을 미침. 구조주의가 주체보다는 구조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한 구조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 파헤쳐 비판하는 목적이 더 크다.

 

(4)후기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는 구조주의가 주장하는 보편적 구조를 해체하려는 보다 급진적 흐름이다. 구조주의는 개념에 대한 구조화이고, 탈구조주의는 구조의 절대화에 반발한다. 보편적 이성과 절대적 진리가 초래한 전체주의적 억압을 문제로 삼고, 개별,우연, 단절, 차이 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따라서 구조주의에서 구조의 공시성에 주목했다면 탈구조주의는 역사성과 상대성에 주목한다.

 

후기구조주의는 구조의 역사성과 상대성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구조를 선험적,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초기구조주의와 견해가 다르다. 이 일부 가운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리오타르가 있다.

 

2.후기 구조주의 학자

(1)리오타르

리오타르는 포스트 모더니즘을 보편화된 거대담론을 의심하고 지엽적이고 국지적인 지식이나 관점을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했다.

리오타르는 기존 서구의 사회이론은 특정 가치를 합리화하거나 그럴싸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몰두해왔다고 주장하고 보편적 진리를 부정했다.

과학이나 권위 있는 이론이 여러 이론을 내놓지만, 그 이론은 사실 그들이 처한 현실이나 주장을 다른 이들에게 부과하려는 것에 불과하고 이를 '주체의 정치학'이라는 개념을 통해 주장했다.

 

(2)데리다. - 해체주의자

데리다는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전통지식을 해체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일상 언어는 절대 중립적일수 없다고 주장하며 언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지식은 해체해야 되며, 텍스트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서브텍스트나 하위 텍스트를 해체해야 한다고 보았다.  소쉬르가 주장한 차이 라는 개념에 연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표와 기호 내용의 관계는 논리적, 필연적 이 아니라 시간적 임의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개념은 텍스트의 다양한 의미를 해독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텍스트는 독자와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러한 분석 과정을 해체라고 한다. 해체는 우리 안에 형성된 개념적 질서를 무너뜨리고, 어떤 사회적 장치나 지적인 아이디어의 저변에 깔린 가정, 판단, 가치들을 분석하고 명확히 드러내며, 타자의 경험에 비추어 그 사건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데리다는 텍스트와 진리가 일치한다는 견해를 부정하며 서브텍스트를 읽고 해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3)푸코의 훈육론

푸코는 구조주의와 후기 구조주의 사상에 걸쳐 있는 학자이다.  주로 사회학적인 영역이나 그의 담론은 다른 분야에도 적용 할 수 있다.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 지식과 권력, 담론 등의 개념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배제된 자, 침묵을 강요한 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려 했다. 광기, 동성애 등의 말은 비정상적 인간을 연구하는 중립적 개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을 타자화 시키고 억압하고 배제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즉 지식,권력이 자신과 남을 구분짓는 경계를 만들고 자신과 다른 사람을 타자화 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다.

푸코는 지식-권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지식은 끊임없이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인간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근대사회의 이성과 합리성은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도구가 되었으며, 결국 지식-권력은 공범인 것이다.

①훈육론

인간은 권력장치와 그것이 만들어 낸 지식에 의해 통제하고 억압당한다. 효율적 통치를 위해 권력이 사용하는 다양한 기법과전술을 규율(훈육)이라고 표현했다. 대표적으로 감옥,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이 있다.

②훈육을 위한 도구

훈육을 위한 도구로 관찰과 감시, 규범적 판단, 시험(검사)를 꼽았따. 관찰과 감시는 파놉티콘(원형감시 감옥)과 유사하다고 했는데 학교 구조를 오픈하는 것은 사람들을 눈에 잘띠게 감시하려고 하는 것이며, 규범을 정해 벌칙을 주는 식으로 구성원을 통제하며, 시험을 통해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해 타자화 시키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③교육적 시사점

푸코의 훈육론을 근거로 오늘날의 학교에서 감시와 제제의 메커니즘과 권력의 실체를 분석할 수 있다. 오늘날 학교에서 실시하는 지능검사, 심리검사, 적성검사, 시험 등이 권력으로 작동되는 역할을 밝혔는데 이들이 학생을 관찰해 정상성 수준을 판단하는 기초가 되고 하나의 감시 권력이 되었다고 본다.

 

푸코의 훈육론을 통해서 현재의 학교 교육이 학생들을 어떤 식으로 구별화 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교육이 학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을때, 학교 내부에서 일어나는 훈육적인 개념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훈육이 어떻게 학교에 작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대학 서열화, 입시제도, 시험을 통해 학교에 그대로 주입시키고 이는 입시 위주의 학교교육의 파행적 운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학교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기본적인 생각도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그대로 영향을 받아 충실하게 따르게 된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의 무한경쟁체제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발전을 자극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반대로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인간을 소외시키는 역기능도 있다. 최소한 학교 교육이 이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장소가 아니라 역기능을 방지 할 수 있는 역할, 아니면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728x90

'교육학 > 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p-m의 교육적 적용으로의 구성주의, 지식기반사회와 교육  (0) 2013.04.18
생태주의와 홀리스틱  (0) 2013.04.17
비판이론  (0) 2013.04.14
실존주의(existentialism)  (1) 2013.04.13
실증주의, 현상학, 해석학  (0) 2013.04.12
Posted by 런닝보이
역사/세계사토픽2013. 4. 15. 00:18
728x90

우리가 세계사 시간을 시작할때 인류의 기원을 아프리카에서 찾으면서도 아프리카는 19세기 리빙스턴과, 스탠리의 탐험 전까지는 미지의 대륙이었다. 실제로 고대 아프리카에 대한 기록이 드물기 때문에 그에 대한 역사도 소략하다.

고대에도 지중해와 홍해 연안 국가들(이집트, 이슬람), 대항해시대의 서부 아프리카 남아공 지방 등등이 알려지고, 노예 무역을 설명하기 위해 약간의 설명이 나오긴 하지만 본격적으로 내부가 알려진 것은 제국주의가 아프리카를 가지고 짬짜미(-_-;)를 하려 했던 시절부터 내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세계사 시간에 배울때도 인류의 기원을 할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최초 발견 된 곳이 아프리카 라고 잠깐 배우기만 할뿐 구체적으로 배우지는 않는다.

 

고교 교육과정에서는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고대에 대해서 문명,문화의 형성 파트의 심화학습 부분으로 학습하고 있다. (현재 나온 2009개정교육과정에 따른 4종 교과서 모두 다루지는 않았다.)그러나 내용이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고 약간약간 다르다.

일단, 쿠시 왕조, 악숨 왕조, 가나 왕조, 말리 왕조, 콩고 왕조, 루바 왕조, 룬다 왕조. 교과서에 있는 지도에 이렇게 7왕조가 소개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것은 쿠시 왕조와 악숨 왕조, 가나왕조 정도이다. (그러나 실제로 굉장히 많은 왕조가 있고 역사도 오래 되었으나. 그리 중요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으며, 쿠시 왕조, 악숨 왕조, 가나 왕조정도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있지만 단편적인 사실관계지식의 나열정도.)

 

 

크게 동부 아프리카(쿠시 왕조(1100B.C경~ AD350 경, 악숨 왕조(BC300~ AD500년대), 서부 아프리카(가나 왕국 4~11C, 말리 왕조 13~15C), 남부 아프리카(콩고 왕조14~18C, 룬다 왕조, 루바 왕조. (지역에 따른 자의적 구별;;)로 구별할 수 있다. 지역과 함께 시기도 차이가 나니 기억하기 더 편할 듯.

 

 

 

 그림1 아프리카의 왕국(쿠시 왕조와 악숨 왕조가 빠졌는데 쿠시 왕조는 나일상 상류에 걸쳐있고. 악숨 왕조는 그 바로 옆에 홍해의 커브(?)의 왼편 홍해 연안에 위치한다, 룬다 루바왕조는 룬다왕조는 콩고왕국에서 오른쪽 으로 2센치쯤 가면있는 자이르강의 지류에 딸려있고 루바왕국은 잔지바르의 글자 '잔'에 있는 호수? 영역에 걸쳐있다. )

 

(1)쿠시 왕조

기원전 1000년경 이집트 문명(신왕국)의 영향으로 성립. 이집트를 정복했다.(고대 이집트의 25대 파라오왕조) 쿠시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 더불어 발전한 아프리카 문명의 하나로 수도 카르마는 아프리카 대륙의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발달했으며, 이집트 파라오와 달리 관습법에 따라 통치하고 세습이 아닌 선출을 통해 즉위하는 왕정 제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대 다른 국가에 없었던 혁신적인 왕정 제도였다. 중국, 인도 , 지중해와 교역했다.

 

(2)악숨 왕조

셈족 계열이 현재의 에티오피아 지역에 기원전 120년경 건설했다.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하기도 했다. 악숨 왕조는 북아프리카 무역 국가로 인도와 로마 제국을 상대로 상아, 금, 향신료 등을 거래했으며, 3세기 경부터 그 세력을 서부로 확장했다.  독자적 화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며 에티오피아 북부에 그 유적이 남아 있으며, 4세기경 크리스트교가 전해져 국교로 전해졌다. 7세기 등장한 이슬람 세력의 침입으로 점차 쇠퇴하다 10세기경에 멸망했다.(교과서의 서술이 조금 다르다. 하나는 6세기 까지. 하나는 7세기 쇠퇴하다 10세기 멸망)

악숨 왕조의 오벨리스크

 

(3)가나 왕조

최초의 아프리카 토착 왕조. 가나 왕조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8세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가나 왕조는 사하라 횡단 무역을 통해  금, 상아, 소금 등을 수출하며 번영했다. 과도한 인구 밀집과 사마라 사막의 팽창으로 식량부족으로 쇠퇴했으며 11세기경 이슬람 세력(모라비드 왕조)과 부족 침입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말리 왕국과 송가이 왕국으로 계승되었다.

 

가나 왕조를 계승한 말리 왕조는 서아프리카에서 1235년부터 1645년까지 존재했던, 만딩고족이 세운 제국이었다. 순디아타 케이타에 의해 세워졌고, 특히 만사 무사의 부로 인해 유명해졌다. 말리 제국은 서아프리카에 문화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나이저 강을 따라 언어, 법, 관습 등을 퍼뜨렸다. 넓은 지역을 다스렸으며, 많은 속국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정하였으며, 말리는 지금도 이슬람교가 9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위키백과 - 박승무, 신비의 세계 서아프리카의 역사, )

 

 

(4)콩고 및 룬다, 루바왕조

콩고와 룬다, 루비왕조에 대해서는 최근에 알려졌다. 8세기경 룬다 루바왕조가 전성기였으나 13~15세기에는 콩고 왕국이 전성기였다고 전해진다. 1414년 포르투갈 항해단에 의해서 그 존재가 유럽에 알려졌다. 그 이후 몇개의 왕조가 교체되고 구체적인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선교를 시작하면서 제국주의의 영향력에 들어가게 된다.

 

 

아프리카 고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시기상 쿠시 왕조, 악숨 왕조, 가나 왕조가 포함되므로 이 왕조에 대해서 알아두면 될듯. 나머지 말리왕조, 콩고왕조 등은 시기적으로 유럽이 중세 이후에 나타나므로.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14. 23:15
728x90

1.비판이론의 의미와 전개

 

(1)의미

비판이론은 1920년대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연구소를 중심으로, 후기 산업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그 안에서의 인간 소외 문제를 다루면서 모순된 체제로부터 인간해방을 꾀한 학자들의 이론체계를 말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체제와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동시에 비판하기때문에 신 마르크스주의(neo-marxism)이라고도 한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와의 차이점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과 계급 사이의 모순관계에 대해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네오맑시즘은 정치경제학적 문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주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가는가, 문화와 일상생활이 사람들의 주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췄다고도 볼 수 있다.

 

(2)전개

헤겔과 마르크스의 등의 독일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비판이론은 초기 이탈리아의 그람시, 헝가리의 루카치 등에 의해서 전개되고 이후 독일의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그리고 마르쿠제 등이 주축이 되어 전개했으나 1970년대 하버마스에 의해 이론적으로 집대성되었다. 분석적 교육철학의 퇴조와 함께 1970년대 후반 이후 대두된 비판적 교육철학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의 영향하에서 형성되었다. 비판이론의 경향은 다양하게 전개되어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입장에서 많은 철학적 입장을 전개했다. (ex 푸코의 감시와 처벌- 그렇지만 하버마스는 푸코를 신보수주의자라고 비난했다, 스피박의 서발턴연구 등등) 이들은 변증법적 관점에서 연구를 전개하는데 이에 대해서 다른 철학적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이다.

 

2.비판이론의 기본입장

 

(1)의식형성의 억압요인 분석

비판이론은 인간의 의식이나 지식이 사회,경제,정치적 제약에서 형성된다는 인식에 터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의식의 형성을 억압하고 왜곡시키는 제약요인들을 분석 비판하고자 하는 기본입장을 갖는다. (ex:그람시의 헤게모니론)

 

(2)인간과 사회의 해방추구

인간의식의 억압요인 분석과 비판을 통하여 불필요한 사회적 억압이나 지배로부터 벗어난 자유롭고 합리적인 인간과 사회의 형성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즉, 인간과 사회의 해방을 학문연구의 목적으로 삼는다. 즉 학문적 중립성이 아니라 이론의 개발을 학문의 해방적 실천을 염두해 두고 개발하는 것.

 

3.비판이론의 사상가

(1)아도르노

과학과 기술 및 문화이데올로기: 선진 자본주의 사회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문화가 인간 지배를 구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화가 인간 지배를 구성하는 새로운 형태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과학과 기술은 단일형태의 새로운 모습을 조성하면서 모든 비판을 침묵시키고 은폐시키는 야비한 대중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고 대량생산된 상품으로 대중무화는 기업가의 이윤추구를 위한 대중착취 수단이며, 결과적으로 평준화된 저질문화의 대량소비를 문화의 획일주의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실제적으로 이런 식으로 적용 해 볼 수 있는 대표적 기업이 나이키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나이키가 런닝마케팅을 통한 20대의 런닝 문화 조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20대 젊은층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굳이 마라톤 대회가 목적이라기 보단 사람들이 다른 잿밥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쥐.)

아도르노를 이렇게 모더니티가 인간의 지배를 하는 과증을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설명했는데 이것을 계몽의 변증법이라 한다.

(2)하버마스

아도르노의 제자인 하버마스는 모더니티에 대해서 완전히 비판적이었던 1세대 비판주의 철학자와는 달리 모더니티(이성)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신하고 도구적 이성의 비판과 함께 민주적 상호작용의 가능성 및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도구적 이성을 극복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다독, 다작, 수많은 기고문, 실천, 의사소통 등을 강조했다고 함)

 

하버마스는 과학과 기술이 보급하는 지식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수행하며 이는 인간에게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인간이 이런 것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삶의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것은 과학숭배주의로 나아가는데 과학숭배주의는 생활세계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억압하고 대중의 탈정치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며,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삶을 황폐화한다. 이를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고 부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판적이며 실천적인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행위자들이 행위 목적과 목표를 상호이해하고 상호 주관적으로 조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때 상호이해는 유효한 동의를 목표로 언어를 매개수단으로 하는 의사소통을 뜻하며, 언어를 통한 상호이해가 곧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기반이 된다. 즉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강제없이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하는 합리성을 가리킨다.

이상적 담화상황이란 대화나 토론에서 참가자 간에 왜곡되지 아니한 평등한 발언의 기회가 보장되는 상황, 지배가 없는 무제한적 토론이 가능한 상황. 

 

(3)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열린사회와 그 적들)

열린사회: 열린사회의 기본은 도그마(독단)이 지배하지 않는 사회이다. 열린사회는 비판을 수용하는 사회이며, 진리의 독점을 거부하는 사회로 아무도 독단적 권리를 행사하지 못한다. 열린사회에서는 비판받지 않아도 좋을 절대적 진리란 용인되지 않으며,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통용되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다.

비판적 합리주의:  열린사회는 비판적 합리주의로부터 시작된다.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실수로부터 그리고 실수의 계속적 교정으로부터 의식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의 원리이다.

역사주의 비판과 점진적 개혁: 포퍼는 역사주의가 하나의 허구적 신화라는 것을 근원적으로 폭로하고 역사주의에 입각한 사회과학적 접근 방법을 단호히 거부한다. 역사주의는 목적론적 방법이 덧씌워질 가능성이 높으며, 포퍼는 사회를 한꺼번에 변혁시키는 혁명이 아닌 작은 조정들의 단계적 누적에 의해 관용과 비판에 의해, 이성적 존재자인 우리 개개인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역사는 창조되고 자유롭고 인간적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4.비판적 교육이론

(1)의미와 학자

비판적 교육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학교가 사회적 불평등(지배계급의 권력과 지위를 유지시키는 역할)과 비인간화에 기여한다고 보고, 학교 교육과정의 이데올로기성을 지적하여 교육과정을 재개념화하고자 한다.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교육적 조건 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이념)의 실체를 벗기고, 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인간의 의식,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 침투되어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밝혀내는 일을 연구과제로 한다. 따라서 수정주의교육사(修正主義敎育史), 신교육사회학(新敎育社會學), 교육과정재개념주의(敎育課程再槪念主義) 등으로 발전되었다.

 

비판적 교육이론의 입장에서 교육이론을 전개한 학자들은, 보울즈, 진티스, 해리스, 그람시, 번스타인, 부르디외, 지루, 애플, 로튼 등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불평등이 학교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고 본다.

 

(2)비판적 교육이론의 기본입장

① 사회불평등 재생산 도구 : 비판이론은 사회의 불평등이 학교교육을 통해 재생산된다고 본다. 학교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억압 구조속) 만들어지고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학습자가 체득하게 해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는 사회기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극복 방안의 제시를 목표로 한다.

② 교육과정의 이데올로기성 : 따라서 교육에서 지식과 의식들이 어떤 숨은 동기와 의도하에서 가르치는가를 분석하고(이데올로기의 분석) 그것이 어떻게 인간을 억압하고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는가를 비판해 부정의와 불평등 문제가 교육에서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것으로 본다.

③ 인간과 사회 예방 : 이런 과정은 결과적으로 인간의 자유로운 의식을 억압하고 왜곡하는 사회,경제, 정치적 제약 요인을 분석 비판해 그런 왜곡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인간과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

 

(3)비판적 교육이론의 교육적 관점

①교육목적: 교육목표의 두 차원인 인격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고, 개성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자율적이고 의식화 된 인간 육성을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본다.

②교육내용: 정치, 인문, 여성해방, 사회과학, 이상사회 구상 등이 있다. 정치교육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바람직한 체제에 대한 전망을 굳히는 의식화 교육이다. 인문교육은 기술교육이나 직업교육이 아닌 삶과 역사를 올바르게 보게 해주는 교양교육이다. 여성해방교육은 사회 안에서 성차별과 성의 해방문제를 다루는 교육이다. 사회과학교육은 사회의 구조와 그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시적 시각에서 보는 역사교육이다. 그리고 이상사회 구상은 복지사회에 대한 꿈을 키우는 교육이다.

③교육방법: 학교와 사회의 관계 회복, 학습자의 교육의 주체성 존중, 갈등현장 견학, 친교 그리고 갈등 상황에 대한 문헌접근이다.

 

(4)비판적 교육이론의 의의와 한계

①의의: 교육철학의 관심 영역을 실제 교육이 일어나고 실천되는 학교현장에 두고 그곳의 사회역학관계에 의해 빚어지는 교육문제를 분석 비판해 보다 개선된 교육을 제시하고자 했다. 또한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교육이 재생산의 도구 기능을 한다는 점을 밝혔다.

②한계: 지나치게 비판의식을 강조해 교육의 순기능을 간과했다. 즉 교육이 하는 사회의 유지발전에 대한 가능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역기능만 보았다. 또한 교육을 지나치게 사회,정치,경제 논리에 의해 해석해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고려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도 하다.

 

5.프레이리의 의식화 교육론

(1)인간화를 위한 교육

프레이리는 인간이 의식을 갖게 됨으로써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세계와 더불어 살고, 대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부단한 시간적 연속성 속에 존재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질 수 있다.

(2)의식화의 의미와 과정

의식화란 자기를 객관화하고 자기를 비인간화하는 제한상황을 의식하여 이의 변혁을 통해 새로운 세계, 존재를 이루어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의식화 과정이 곧 해방의 과정이고, 인간 해방이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해방의 교육이란 세계의 정체를 밝히고 프락시스를 통해 세계의 변혁에 개인 스스로를 투신하고, 압박의 현실이 변혁되면 만인을 위한 영구적 해방을 도모하는 것.

 

(3)은행저금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

프레이리는 자신의 교육에 대한 방법으로 문제제기식 교육을 할 것을 제안했다. 은행저금식 교육은 지식을 저금하듯이 머릿속에 집어넣어 필요할 때 꺼내쓰는 기존의 지식중심 교육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의 대안으로 소통을 위한 문제제기식 교육을 할 것을 제안했다.

(4)실천적 앎을 위한 프락시스

이론은 실천을 숙고하게 하고, 실천을 숙고해 더 잘 생각하고 더 잘 실천하는 방법을 배운다. 프락시스는 실천을 비판적으로 반성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는 인식론과 존재론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는 학습을 지향한다. 이론을 통해 실천을 새로이 해석하고 숙고하는 과정에서 실천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5)소통을 위한 대화의 교육과 새로운 세계의 건설

 

교육은 대화를 통해 세계를 건설하고, 재창조하고, 인간화하는 역사의 과정이다. 그런데 기존의 대화 방식은 공허하고, 안이하고, 개개인의 생생한 경험 정도로 전락되어 공부하는 지식의 대상으 올바로 보지 못하고 있다.

대화는 지시가 아니다. 지시는 전달, 건네줌, 수여, 교도, 기계적 이동 구호, 조작, 독단 문화적 침략 등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학생이 백지라고 보는 선전 행위다.

대화는 서로 소통하는 행위이다. 대화를 통한 교수학습은 기술적인 것이 아닌 변혁을 지향하는 해방교육이다. 주체적 인간은 대화적 인간을 기대한다.

함께하는 대화는 세계 속세어세 자기 존재를 인식하는 소크라테스적 대화이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오랫동안 잊혀진 사상을 되찾는 초보적 도구로 사용한다. 대화를 통한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민주적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인식전환을 시도한다. 교육은 의사소통이고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이동이 아닌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의 대상을 탐구하는 대화 속에서 주체들 간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주체들이 대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알아가는 주체들 사이에서 앎의 행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문제제기적이다.

또한 프레이리는 이런 교육을 위해서 기본적인 문해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레이리가 활동할 당시 브라질은 문맹률이 높아 글도 제대로 못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프레이리는 이들을 위한 문해교육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6)교사 자질론

프레이리는 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겸손, 사랑, 용기, 관용이라고 했다.

 

겸손: 교육은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능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사랑: 무방비의 사랑이 아닌 무장된 사랑이다. 싸우고, 고발하고, 선언할 권리와 의무를 믿는 사람들의 치열한 사랑이다.

용기: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기 보다는 두려움을 껴안고 그것을 이겨낸 상태의 마음.

관용: 관용은 서로 다른 것에서 배우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친다. 관용이 없으면 진지한 교육활동이 불가능하고 민주주의의 경험이 불가능하다. 변화무쌍한 아이들의 차이를 끈기있게 받아들이고 참을줄 아는 사람이 진보적 교사다.

 

6.대중매체의 기능

(1)순기능

지식 전달의 기능, 사회 문화적 즐거움 제공, 시청하는 계층을 하나로 묶는 기능(시청하는 사람은 상하계층을 막론하고 같은 정보 제공받음), 빠르게 소식 전달.

(2)문화적 재생산 기능

기존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과 깊게 관련되어 지배세력의 이익에 봉사하며 더 나아가 불평등한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ex : 이탈리아의 언론장악)

(3)문화공간 기능

매스미디어 문화공간의 기능의 가장 큰 특징은 획일성과 공통성이다.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특징을 가장 쉽게 효과적으로 받는 건 아도오가 청소년 세대이다. 따라서 이러한 세대가 제대로된 미디어를 향유 할 수 있도록 '인간적'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즉 세속화된 문화적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을 의미한다.

 

 

점점. 내용이 제대로 이해하는것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막 쓰기만 하는 지경이 되가고 있다. 목이 아프다고만 핑계를 대기엔 좀 짜증날 정도? -_-;비판이론은 앞으로도 교육사회학에서 나오는 학자들의 주된 사상적 기반이 되기 때문에 확실하게 알아두고 가야만 한다. 특히 하버마스와 칼 포퍼의 차이점와 비판이론에 기반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들. 그리고 비판이론에 근거해서 요즈음 우리 세대가 직면한 티비, 인터넷, 스마트폰 등에서 쏟아지는 미디어 자료들에 대해서 어떠한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판이론에서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를 가지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버마스와 포퍼의 차이는 애매한 가름이긴 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차이라고 보면 간단하겠다. 하버마스는 상호 대화에 관련한 전면적 비판을 통해 가장 나은 답안을 찾는 것을 말했고 포퍼는 기존의 문제점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수정해나갈 것을 말했다.

그리고 프레이리는 의식화를 통한 인간화.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문제제기식 교육과 문해교육을 주장했고 프레이리도 상호이해를 기반으로 한 소통을 중요시하게 했각했다. 그리고 프레이리의 교사론은 겸손, 사랑, 용기, 관용을 교사가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흐음.

 

소크라테스, 부버, 프레이리의 '대화'의 의미와 교육적 시사점은

소크라테스, 부버, 프레이리가 말하는 대화의 기본적 전제는 대화를 하는 사람의 인격적 존재임을 인지하는 것이며 대화를 통해 내면의 있는 것의 발현, 의식화, 자아실현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넓게는 교육 목적에서부터 실제적인 교수방법론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교육이 지식전달이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스스로 사고하고 실천 할 수 있는 교육을 할 것을 시사하고 있다.

728x90

'교육학 > 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태주의와 홀리스틱  (0) 2013.04.17
구조주의  (0) 2013.04.15
실존주의(existentialism)  (1) 2013.04.13
실증주의, 현상학, 해석학  (0) 2013.04.12
인식론과 지식의 종류  (0) 2013.04.11
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13. 12:41
728x90

1.실존주의 철학의 의미와 배경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의 존재와 주체적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학으로 야스퍼스, 하이데거, 사르트르가 대표적이다.

실존주의는 두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지나친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과 물질문명의 발달로 일어난 인간소외 경향의 염세적 분위기가 가득한 유럽에서 대두되었다. 따라서 이성의 힘을 무한하게 믿는 합리주의와 모든 현상을 과학적,법칙적으로 증명하려는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과 도전으로 시작되었으며 인간 실존의 문제를 부각시켰다.

실존주의 교육철학은 실존주의에 근거를 둔 교육철학으로 볼노브와 부버가 있다.

 

2.실존주의의 기본입장

 

(1)주체성

인간에게는 천성이 본질로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은 신이나 초자연적 힘에 의해 결정된 불변의 본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 없는 무의 존재로 세상에 던져졌을 뿐(피투, 기투된 존재), 자신의 자유의사에 따라 본질을 창조해나가는 조재이다. 덧붙이면 실존주의는 현재를 강조하는데 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지나간날은모두 뒤로, 다가온날을향해 할로~ 이런 느낌이랄까? 현재는 이미 기투된 현재이기 때문에 과거까지 어찌됐든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선택을 잘 해야 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것은 실존주의가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의 자존감 바닥 상태를 반영한 철학이기 때문인듯.

(2)자유의 존재

인간은 피투된 존재이며 가능성에 한계가 있지만, 주제적인 생각과 결단, 실천행위를 통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해 나갈 수 있는 자유의 존재이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3)책임의 존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는 사르트르의 말은 자신의 자유의사에 의해 자신의 행동과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동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자유만큼 책임을 강조하는데 그 이유는 개인의 행동이 자신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만물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4)인식의 주체

모든 인식에 있어 무엇이 자기에게 진리인가를 궁극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개별적 자아이다.

 

2.실존주의 교육이론

(1)교육목적

실존주의교육철학이 가진 교육목적은 자유의사에 따른 선택과 판단에 의해 자신의 생활과 운명을 결정짓고 책임질 수 있는 자아실현적 인간 형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이에 책임지기 위해 전인적 인격교육이 필요하다.

 

(2)교육내용.

죽음,좌절,공포,갈등과 같은 인간 삶의 어두운 측면도 보여줘도 적극적인 삶의 의미를 느끼도록 한다. 실존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교과목은 인문학과 예쑬이다. 실존적 선택은 매우 개인적이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정서적이고 심미적이면 시적인 과목들이 실존적 교육과정에 적합하다고 본다.

(3)교육방법

교육현장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간이 인격적 만남이 이뤄져야 한다. 학생의 개성과 주체성을 존중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심리적 갈등과 어려움을 같이 공감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정열을 지녀야 한다.

 

4.실존주의의 의의와 한계

 

(1)실존주의는 구체적이고 개체적인 자유의 확대를 위한 인간교육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실존주의는 인간의 지적인 삶보다 감성적인 삶을 강조한다. 인간의 행동양식과 창조성을 지적인 것 뿐만 아니라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것부터 나온다는 것. 이는 인간의 감성적인 면을 충분히 이해해 학생의 부적응현상을 치유하려는 실존주의적 상담이론 및 실천을 가능하게 했다.

 

(2)개인의 자유를 너무 중시한 나머지 인간이 타자와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개인의 절대적 자유는 자칫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의 가치에 대해 소홀하게 된다.

 

5.실존주의 교육사상가

 

(1)부버의 교육이론

부버는 교육목적을 독자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의 형성과 성장을 돕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교육이 자유로운 인격 형성을 돕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우정 형식의대화,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생의 입장에서 그들의 독립성을 존중하면서 교육해야 한다. 만남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의 대화여야 하며, 동시에 자아를 발견할 수 잇는 상황이어야 한다. 즉, 나-그것이 아닌 나-너의 관계는 인격적 대화의 관계이다.

 

(2)볼노브의 교육이론

교육과 만남: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라고 했으며 진정한 교육은 너와 내가 마음으로 호흡할 때, 인격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질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볼노브는 인간이 천부적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계발을 통한 점진적 성장을 부정한다. 인간은 위기, 각성, 충고, 상담, 만남, 모험, 좌절 등과 같은 비연속적 요소에 의해 비약적으로 성장 할 수 있다.

 

 

 

실존주의의 기본 입장과 교육적 관점 그리고 교육(교육과정, 동기이론, 학습이론, 상담이론)에 미친 영향을 논술하시오

실존주의의 기본적인 인간관은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이 없으며 단지 살아가면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적인 인간의 존재라고 이해한다. 다만 태어날 때는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투되는 존재이므로 과거는 어찌됐든 현재의 선택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택과 책임을 지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겠다. 그것이 올바른 선택과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교육과정, 동기유발, 학습방법, 상담이론에 적용되어야 할 것인데. 특히 상담이론은 실존주의적 입장이 상당히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된다. 상담을 요할만큼 문제가 되는 학생들의 특징은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을 감성적인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상담이 될 것으로 보이고, 이는 실존주의 철학과 일정부분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728x90

'교육학 > 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조주의  (0) 2013.04.15
비판이론  (0) 2013.04.14
실증주의, 현상학, 해석학  (0) 2013.04.12
인식론과 지식의 종류  (0) 2013.04.11
20세기 미국의 교육철학  (0) 2013.04.10
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12. 12:07
728x90

1.계몽사상 및 특징

계몽사상이란 인문주의(르네상스), 종교개혁운동(종교개혁), 자연과학의 발달(과학혁명) 등을 바탕으로 형성된 18세기 서양의 사회개혁사상이다. 절대왕정의 구속과 억압을 제거하고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절대주의의 몽매성을 일소해야 한다는 구체제 개혁의 정치,사회,교육적 운동이다. [각주:1]

 

(1)계몽사상의 특징

①보편적 법칙을 통해 사회변혁: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와 문화까지 관통하는 법칙, 절대적 진리가 있다는 전제하에 이성의 힘으로 그 보편적 법칙을 알아 냄으로써 자연과 사회 인간의 역사를 통제하고 변혁시킬 수 있다고 봄(과학적 사고)

②이성 신뢰: 이성이 모든 지혜의 지침이며 이성을 통해 종교와 정치 사회적 불평등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봄(이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

③개인 존중: 인간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모든 종류의 권위에 우선한다.(자연권)

④사회진보: 인간이 타고난 이성을 계발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 이를 통해 사회를 개조하고 역사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역사적 진보주의의 기반이 되기도 함.)

⑤반역사주의 반국가주의: 인간의 원죄와 성악설을 부정하고 이성을 지닌 인간은 새로운 새로제도를 만들 수 있으므로 개인을 속박하는 교회와 국가의 권위를 부정하는 반역사주의 반국가주의 성향을 지녔다.[각주:2]

 

(2)계몽사상이 교육에 미친 영향

①계몽주의는 천부적 이성능력을 발휘하는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무차별이다. 보편적 천부적 개인의 권리를 존중 실현에 관심을 보이게 되며, 교육에서도 개인을 존중하는 아동존중 교육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②자연주의 교육론: 계몽사상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이성과 권리를 존중해 개인의 권리와 경험, 흥미와 개성, 개인의 자연적 발달을 존중하는 자연주의 교육론 형성 (루소의 에밀)

③공교육제도 성립: 인간은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볼때 존엄한 존재이며, 동시에 평등한 존재이므로 모든 계층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보편적 교육론으로 발전해 근대 공교육제도의 성립에 기여.

④합리주의: 계몽사상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모든 불합리성이 치유될 수 있다고 봄. 따라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이성의 계발을 교육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계몽사상은 주어진 문제에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도구적 이성의 성격이라는 점에서 총체적 이성을 사유능력으로 보는 서양의 전통적 관점과 차이가 남

⑤실증주의적 사고: 계몽주의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은 본질적으로 미리 정해져 있는 보편적 법칙에 따라 작용하는 거대한 정교한 기계라고 보고 (유기체적 인간관)기계론적 세계관에 근거해 인과론적이며 객관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법칙의 발견을 중요이것은 과학적 실리주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침 

⑥교육만능론 : 진보를 역사의 근본법칙으로 간주해 이성을 통해 편견과 불합리성이 극복되면 세계는 끊임없이 향상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로크는 인간을 백지상태로 보았다.) 이는 교육의 가능성과 사회개조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져 교육만능론을 뒷받침했다.

 

 

2.고전적 실증주의

(1)실증주의와 의미와 유형

실증주의는 초경험적 세계를 부인해 모든 지식의 대상은 경험적 사실에 한정하려는 철학사조를 일컫는다. 19세기 철학자 콩트부터 시작해 밀, 스펜서, 뒤르켐을 통해 포괄적 사회학 이론으로 발전했으며 신실증주의는 분석철학으로 발전해 갔다.

 

 

(2)고전적 실증주의

 

①고전적 실증주의의 특징

㉠인식의 객관주의: 인식은 관찰하거나 경험하는 개인의 차가 없어야 되므로 초자연적 현상은 객관성을 인정받기 어려움으로 과학의 대상에서 제외

㉡보편적 경험주의: 실증주의는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외현적 현상만이 참된 지식의 유일한 원천이므로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증거를 통해 보편적인 법칙을 찾고자 한다.

밀(J .S. 밀)의 일치법과 차이법

일치법: 어떤 현상들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때 개별 사실들의 공통된 원인들을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

차이법: 마찬가지로 어떤 현상들의 원인을 찾으려고 할때 비슷한 특징을 갖는 것들의 차이를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

㉢과학적 방법:  자연현상의 연구하는데 쓰는 과학적 방법을 사회현상의 연구에 적용하고자 한다. 이를통해 인간과 사회현상을 지배하는 보편적 법칙을 찾는다.

㉣사회실체설: 위와함께 유기체적 세계관에 근거해 개인으로 구성되는 사회가 개인의 단순한 합을 넘어서는 속성이 있다고 보고, 사회현상에 대한 거시적 접근을 시도한다.

㉤가치중립적:실증주의자들이 가치중립적 입장을 택하는것은 가치의 개입이 과학적 절차를 왜곡시킬 우려를 있다고 보기 때문.

 

②고전적 실증주의의 영향

고전적 실증주의는 행동주의에 영향을 주고 교육을 계량화 하는 과학적 방법도입에 기여했다. 또한 유기체적 세계관에 근거해 교육현상에 대한 체계적 접근을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③고전적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

실증주의가 주장하는 자연과학적 방법도 보편적이라기보단 시간 공간적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인간행동에 있어서 가치와 의지를 배제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현상을 계량화, 수량화하는 것은 측정 방법과 척도에 따라 의미 차이가 있으므로 질적인 인식의 범주가 차이가 생긴다.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은 실증주의가 자료로 삼는 모든 것이 과거에 축적된 자료에 한정된다. 이미 밝혀진 지식을 검증하는 자료를 찾는 노력이기 때문이다.[각주:3]

 

3.신실증주의:분석철학

분석철학은 언어와 개념에 사물의 본질이 있다고 보고, 언어와 개념의 의미를 명료하게 분석해 사물을 이해하려 했다. 어떤 세계관, 인생관을 표명하기 보다는 사상의 표현 수단인 언어 및 기호의 분석을 철학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사상적 배경으로 흄과 소쉬르 같은 느낌이..역사에서도 포괄법칙을 강조하는 포퍼와 헴펠이 신실증주의자로 분류된다.)

 

(1)분석적 교육철학

1950년대 중반부터 영미 교육철학계의 흐름을 장악하다 1960년대 전성기. 1980년대 쇠퇴한 사조. 초월적,사변적,형이상학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감각을 통해 인식 가능한 사실만을 진정한 지식으로 간주 하고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연구방법을 강조한 실증주의 철학에서 기원. 제2차 세계대전 전의 진보주의 교육운동과는 달리 사회와 교육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교육철학을 객관적 지식체계로 이루어진 독자적 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노력. 분석적 교육철학의 등장과 더불어 교육철학은 독립된 연구대상과 방법을 가진 하나의 학문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함.

하디, 피터스, 브라우디, 프라이스, 세플러,    2세대 월슨, 허스트, 마틴, 그린, 솔티스 등이 있다.

 

①기본입장

분석철학자들은 교육문제들이 언어의 문제라고 주장하고 교육에서 사용하는 용어, 진술 등 제반 언어를 명료하게 가다듬을 통해 교육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교육철학이 교육, 교수, 학습, 지식 등의 교육 논의에서 사용되는 중요개념의 의미를 명료하게 밝혀 교육관,교육이론에 내재한 모호성,모순성,불명확성을 제거해야 한다. 이를통해 교육이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게 제시.

분석적 교육철학은 '무엇에'가 아니라 '어떻게'탐구하느냐에 관심을 갖는 철학적 방법론이다. 분석적, 평가적, 사변적, 통합적 방법이 있다.

 

②한계

철학의 가치중립성을 춛구하여 교육철학의 실천성 퇴색, 교육이념, 교육관, 교육목표를 과소평가하고 바람직한 세계관 윤리관 확립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언어는 사회,시대,문화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므로 언어는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라는 근본적인 문제제기

 

4.현상학

현상학은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의 철학이다. 현상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사물을 본체라고 하고 그에 대한 경험을 현상이라고 한다.

'앎'. 경험에 의해 얻게 된 지식은 참다운 지식이 될 수 없다고 보고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앎, 과학이 의심하지 않고 전제로 삼고자 하는 앎이 무엇인가 밝히려고 했다.

 

후설, 실존주의자로도 불리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르 퐁티, 볼노브, 부버 등이 있다.

 

현상학은

사물과 이를 인식하는 인간이 나뉜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부정한다

인간의식은 능동성을 지니고 있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개념과 이미지를 결합시켜 파악하는데 후설은 이를 인간 의식의 특성을 지향성이라고 부름.

현상: 모든 외부의 대상이 인간 의식의 특성인 지향성으로 인해 새롭게 구성되고 인간의 의식속에 나타난 대상의 모습이 현상 - 인간의 주관성, 특수성을 강조

앎이란 인간이 외부의 대상을 의식작용을 통해 구성함으로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구체적인 생활세계 속에서 경험들을 통해 축적된 의미들을 대상에 부여함으로써 현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1) 현상학적 환원의 의미와 의의

①과학적 연구의 한계

과학적 연구는 인간 감각기관이 온전하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출발한다. 하지만 현상학은 우리 감각기관에 의존하기 때문에 불완전하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지식을 기정사실화 해서 믿고 있는것 자체가 편견, 선입견이라는 것.

 

②현상학적 환원의 의미와 기능

현상학자들은 사물이나 현상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기정사실화 해 온 과학적 지식,믿음, 판단 등을 철저하게 반성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후설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사물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중지해야 한다고 생각-에포케epoche-했다.

그동안 내가 경험했던 방식, 을 의심하고 보면 여태 당연시했던 우리 일상생활도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각주:4]

(3)현상학적 방법의 교육적 기능

현상학적 방법들은 교육현상을 바라볼때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교육의 의미와 차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교사들이 기존의 교수법, 학생관, 교재관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해 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합리적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주장했다.

 

(4)교육에 주는 시사점

 

①교육과정관의 변화: 현상학은 지식이 인식 주체와 분리될 수 없음을 시사하는데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주관적인 요소가 필수적으로 작용하면 교육내용이 객관적,보편적이라고 보는 전통적 교육과정관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②교육방법의 변화: 교육내용으로서의 지식이 주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학습자에 의해 다르게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학습자에게 강제로 부과하는 교육방법은 문제가 된다. 교육방법 구성시 학습자의 주관을 중요시해야됨

③현장 학습 및 체험활동 중시: 구체적인 경험이 결여된 지식은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현장학습 및 체험활동 중시

④영향 : 해석학, 실존주의, 인간주의에 영향을 미침

5.해석학 (현상학과의 가장 큰 차이는 어디에 관심을 두느냐 인것 같은데, 현상학은 객체를 인식하는 대상의 주관성에 중점을 둔다면 해석학은 객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중점을 둔다고 봐야 될까?좀더 방법적인 것)

(1)해석학의 의미와 전개

해석학은 신학적인 의미. 주로 경전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가치를 규명하는 작업에서 출발해 현상학의 영향을 받아 교육을 포함한 인간행위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확대 되었다. 해석학은 삶 또는 인간정신의 파악 방법인 이해에 관계되는 철학 이론이다.

(2)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해석학

하이데거는 이해를 대상세계를 자신의 미래와 관련하여 유용성의 관점에서 파악하게 되는 것이라 했다. 이러한 이해의 기반은 선이해를 바탕으로 이해를 하게 되는데 따라서 해석은 개별성, 상대성, 주관성을 띠게 된다.

 

(3)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

가다머는 전통의 개념을 중시한다. 전통은 아이디어,신념,실제의 집합체로 이에 토대에서 텍스트를 파악한 다음 그 지평을 넘어 새로운 이해를 위해 나아가게 된다고 봄. 가다머는 교수를 전통 안에서의 대화로 파악.

 

(4)딜타이의 정신과학적 해석학

딜타이는 인간의 삶은 자연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인간행위의 의미를 맥락과 연관하여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과학적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봤다. 딜타이는 감정이입을 통해 이해에 도탈할수 있다고 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사회문하적,역사적위치에서 볼 것을 말하는 추체험을 강조했다.

 

(5)리쾨르의 해석학

리쾨르는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텍스트가 주는 의미 외에 그것이 숨기고 있는 의미까지도 끌어내 해석해야 된다고 강조. 역사책이나 문학작품을 읽음으로써 텍스트가 갖고 있는 그 자체의 세계를 보고, 현재와 다른 관점을 이해하게 되는 한편, 그로 인해서 우리가 갖는 선입견, 억눌린 욕망, 숨겨진 가능성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1. 그런데 말이 엄밀히 따져보면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되는게, 절대군주도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아 인민을 계몽해야 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러한 것은 어떻게 설명되야 되는건가??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절대자에게 주권을 줘야된다고 말하기까지 했고, 이 시대의 계몽사상가들은 엄밀히 말하면 부르주아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도 많았을텐데. 음 일단은 일반적으로 저렇게 생각하되 전부 그런건 아니라고만 알아두면 될것 같다. [본문으로]
  2. 여러 교육학 책들에 보면 반역사주의, 반국가주의라고 나오는데 이해가 잘 안감. 지식백과에는 단지 반봉건, 반교회라고 나오는건 왜 그런지 이해가 가는데 반역사, 반국가주의라는 주장은 근거가 뭔지 이해가 안간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은 실증주의자들이 반역사주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설명하면 납득이 갈만한데 단순히 교회와 국가의 권위를 부정한다고 해서 반역사주의까지 나가는건 이해가 잘 안간다. [본문으로]
  3. 이러한 비판들은 실증주의의 과학적 보편성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강 조로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4. 아 현상학, 해석학, 탈근대주의 구별하기가 어느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힘들다. ㅡㅡ; [본문으로]
728x90

'교육학 > 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판이론  (0) 2013.04.14
실존주의(existentialism)  (1) 2013.04.13
인식론과 지식의 종류  (0) 2013.04.11
20세기 미국의 교육철학  (0) 2013.04.10
형이상학과 그리스 철학자  (0) 2013.04.09
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11. 11:21
728x90

1.인식의 정의와 인식의 의미

(1) 인식의 사전적 정의 (두산백과)

1.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

2 . <심리> [같은 말] 인지8(認知)(3.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3 . <철학> 일반적으로 사람이 사물에 대하여 가지는, 그것이 진(眞)이라고 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개념. 또는 그것을 얻는 과정.

(2)인식의 의미

인식이라는 말은 지식과 같은 뜻이지만, 지식은 아는 작용보다도 이미 알고 있는 성과를 가리키는 데 반해, 인식은 성과와 함께 아는 작용도 포함한 의미를 갖는다. 인간은 인식 과정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객관 세계(자연ㆍ사회)에 대한 인식(지식)을 획득하고, 이 성과에 기초하여 객관 세계에 작용을 가해 이것을 변화시키고 개조한다. 인식의 의의는 단순히 객관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지적 만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천에 그 실제 생활에 기여하는 것에 있다.

이 지적 성과와 실천 생활의 상호 관련이 있어야만 인식은 발전한다. 그러나 인식과 실천의 관련을 중시하는 것은 빠뜨릴 수 없지만, 인식 과정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예를 들면 감각으로부터 사고에 의한 정련(精鍊)을 거쳐 성립하는 것을 보아도, 사고 그 자체가 거치는 각 단계의 연구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인식에 대하여 고찰하는 철학의 분야를 인식론이라 부른다.

아. 뭐 어떻게 명쾌하게 이해는 잘 안되지만 인식이라는 단어 쓰이는 상황을 봐서 이해했을땐 (상황을 인식하다. 문제를 인식했다. 등등) 사람이 어떤 객체(사물이든 뭐든. 사람 주변이든 내부든 모든 것 )을 파악하는 현상이나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인식론은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철학의 분야이고, 인식을 하기 위해선 인식을 하는 주체, 인식을 하는 대상. 인식을 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겠다. 인식론은 다른 학문의 분야에도 많이 적용 되는 것이므로(역사과에도 심하게..) 개념을 좀 잡아둘 필요가 있는 듯.

2.인식론의 개관

인식론은 다양하게 분류 가능하나 크게 고전적 인식론, 분석적 인식론, 해석적 인식론으로 나눌 수 있다. 고전적 인식론은 인식의 대상에, 분석적 인식론은 지식의 논리적 조건( 지식은 무엇이냐,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맞을까.?) 해석적 인식론은 인식의 주체성에 중심을 두고 앎의 본질을 규명한다. 해석적 인식론은 역사철학의 바탕이 된 인식론으로 나름 친숙하다(-_-;)

3.고전적 인식론

(1)인식의 대상에 관한 이론

인식의 대상에 관한 이론으로 실재론과 관념론이 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실재론은 실재하기 떄문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라고 보고, 관념론(유명론 이라고도 글자를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엄밀히 따져서 똑같은 것이라고 봐야될지 잘 모르기 때문에)은 우리가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것들은 우리의 지각과정에서 나타난 관념의 표상일 뿐이다.

(2)인식의 원천에 관한 이론

어떤 방법을 통해 획득한 지식이 확실한가 에 대한 논의이다. 대표적으로 로크로 대표되는 영국의 경험론과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합리론이 있다. 합리론은 칸트에 의해 집대성 된다. 인식론에 대한것도 칸트가 집대성한 것이라고 알려짐.

합리론자가 인식의 원천을 '이성'으로 보았다면 경험론자는 '경험'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인식하는 방법을 다르게 파악했기 떄문이다. 로크는 인간의 마음을 백지로 보고 경험을 통해 외부의 감각인상을 관련짓는다고 생각했으며 합리론자는 일종의 선험적 지식, 본유관념 등의 본래부터 인간의 마음에 인식의 기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진리의 조건에 관한 이론

진리의 조건에 관한 이론은 어떤 주장이나 명제가 진리이기 위해서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대응설, 정합설, 실용설로 구분된다.

대응설은 어떤 신념 혹은 판단이 실제와 일치하면 그 신념이 진리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모든 실재는 감각이나 지각에 관계없이 객관적 실체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전제하고 있다.

정합설은 어떤 신념 혹은 판정이 하나의 체제 속에서 다른 신념 혹은 판단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 ㄷ진리라는 주장이다. 즉 논리적 법칙이 성립하면 된다. 이것은 합리론자들의 입장이다.

실용설은 어떤 신념이나 판단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소기의 목적하는 바를 만족시킨다면 그것이 진리이다. 인간은 결코 절대적 진리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용주의자들이 지지한다.

(4)한계

고전적 인식론은 지식의 대상 원천 및 진리의 조건을 밝히고자 했으며, 지식의 확실성에 대해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고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고전적 인식론에 따르면 지식의 속성에 대해서 규정되지 않았으므로 가르칠 내용도 불확실해진다는 문제에 빠진다. 그러므로 지식의 대상,원천, 진리의 기준에 대한 합의를 볼떄까지 교육을 중지시켜야 된다는 문제점이다. 그러나 철학적 논의는 철학적 논의이고 교육은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지식의 확실성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4.분석적 인식론

(1)대두배경과 관심

분석적 인식론은 고전적 인식론이 다루는 지식의 대성,원천 진리의 조건에 대한 논의는 형이상학적이어서 모든 사람이 신뢰할 만한 근거확보가 어렵고, 지식의 원천에 관한 질문은 철학적이기보다 심리학적이며, 진리의 조건은 객관적 인식 가능성에 대한 확신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따라서 분석적 인식론은 언어 혹은 개념과 논리적 분석을 통한 의미의 명료화에 있다.

(2)지식의 형태

분석적 철학자들은 지식을 명제적 지식과 방법적 지식으로 나눈다. 명제적 지식이 진리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방법적 지식은 무엇을 하는 기술이나 방법을 아는 것이다. 명제적 지식은 논리적 지식, 사실적 지식, 규범적 지식으로 분류할수 있다.

논리적 지식은 개념적 지식 이라고도 하고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의미상의 관계를 나타내는 지식이다. A는 B다 같은 문장에서 A를 분석하면 B 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개념과 개념 사이의 논리적 관계가 성립하면 된다.

사실적 지식은 '경험적 지식'이라고도 하며 개념의 진위가 경험적 증거나 관찰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다.

규범적 지식: 진위 여부가 확실히 드러지 않는 지식. 가치에 대해서 다루는 지식이 많음

형이상학적 지식: 논리적 추론이나 경험적 증거를 초월하는 부분이기 떄문에 진위 판단이 어려움

(3)지식의 조건

지식의 조건은 명제적 지식에 주로 적용된다. ~라는 것을 안다 라는 주장을 성립시키는 조건 등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신념조건, 진리조건, 증거조건( 그리고 방법조건)을 제시했다.

신념조건은 어떤 지식을 아는 것은 어떤 것을 믿는 것을 전제한다고 하는 것이다.

진리조건은 신념조건이 지식을 안다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이 진리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거조건은 진리이기 위해선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어떤 지식이 진리라고 믿고 그것이 진리이며 진리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것

방법조건은 증거를 얻는 방식과 관련된 조건이다.

5.해석적 인식론

(1)절대적 인식론

고전적, 분석적 인식론에서 전제하는 것으로 지식의 객관적 근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시간 공간을 초월한 객관적 진리가 있으며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2)상대적 인식론

해석적 인식론에서는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떄문에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후설은 학문의 내용을 이루는 경험과 인간의 내면적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경험을 구별한다. 경험, 체험의 구별이다. 체험과 경험이 단절된 것이 아니고 서로 영향을 끼쳐야 한다. 그런데 경험은 개별 개체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인지, 정서, 감정 등을 포괄하는 기능을 지니지만 온갖 감정과 정서를 포함하는 전체로서 성립한다.

딜타이는 지식에서의 객관성도 많은 주관이 공유하는 공통주관성에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3)해석적 인식론의 의의와 한계

해석적 인식론은 지식이 우리의 일상적 경험, 체험, 삶 자체와 분리된 객관적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기 보다는 인식 주체의 생생한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지식은 상대적인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해석적 인식론은 지식에 있어서 인식 주체의 의식이나 심리적 과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객체의 인식은 주관성 뿐만 아니라 객체와의 상호작용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6.미래 사회와 학교 지식

지식기반 사회에서 학교가 해야할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새로운 직업세계가 요청하는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유연한 학습체계로 바뀌는 것이다. (드러커)

그러므로 학교에서는 형식적 지식보다는 암묵적 지식을 강조해야 한다. 암묵적 지식은 실제 경험과 실천을 통해 얻은 지식이다. 이러한 교육을 위한 방법으로는 기존의 경직된 학습방법을 탈피해 소규모 학교, 맞춤형 교육, 디지털 기술의 활용, 쌍방향 교수-학습, 조력자로서의 교사, 모둠 단위의 지식검색과 자기주도 학습, 학교의 업무분장 재편 등을 염두해야 한다.

728x90

'교육학 > 논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실존주의(existentialism)  (1) 2013.04.13
실증주의, 현상학, 해석학  (0) 2013.04.12
20세기 미국의 교육철학  (0) 2013.04.10
형이상학과 그리스 철학자  (0) 2013.04.09
교육철학의 성격과 방법론  (0) 2013.04.08
Posted by 런닝보이
역사/한문사료2013. 4. 11. 01:33
728x90

理氣元不相離 似是一物 而其所以異者 理無形也氣有形也 理無爲也氣有爲也 無形無爲 而爲有形有爲之主者理也有形有爲 而爲無形無爲之器者氣也……氣之偏則理亦偏 而所偏非理也氣也 氣之全則理亦全 而所全非理也氣也

 

 

해석: 이기는 본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 흡사 하나의 물체라 할만하나 그것은 다른것으로써 있는바 이는 형제가 없으며 기는 형체가 있다. 이는이룸이 없으며 기는 이룸이 있다. 형체가 없으면서 하는 것도 없고 형체가 있고 하는것의 주인이 이이며, 형체가 있는 것이면 이룸이 있다.  형체가 없고 이룸이 없는 사물은 기이다. 기가 쏠리면 이도 쏠리나 솔리는바는 이가 아니고 기다. 기가 온전하면  역시 이도 온존하나, 이가 온존하지 않은 바는 기이다.

 

정확히 이 글의 출처가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아마도 이이의 이통기국론에 대해서 설명한 것인듯. 율곡전서를 막 찾다보면 나오겠지?

이기는 본디 떨어져 있지 않으니 이기일원론의 입장 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기가 함께 오지만 그 성질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는데, 기가 온전하면 이가 온전하고 이가 온전하면 기가 아니니. 기가 온전한 상태에서 이가 온전하게 보전됨을 알 수 있으므로 이와 기가 한 물체이지만 기가 온전한 상태에서 이가 온전하게 존재하는 기발이승일도설임을 알 수 있다. (아 사상사는 왜이렇게 어려운걸까. 제대로 이해하는 건지 헷갈리네)

 

 

건국 초의 성리학자들 중  정도전, 권근 등 관학파로 불리는 인물들은 문물 제도 정비와 부국 강병을 위한 이념으로서 성리학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당유학, 불교, 도교, 풍수지리, 민간 신앙 등을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사림의 본격적인 정계 진출과 맞물려 기존의 공신과 외척의 비리와 횡포를 성리학적 명분론에 입각하여 비판하고, 당시 사회 모순을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의 실천으로 극복해 보려는 태도가 나온다. 이때 성리학을 둘러싸고 다양한 학파가 나뉘며 이에 따라 정치적인 태도도 달라진다.

 

 그림 1 사림의 계보도

 

다음과 같이 고려시대 부터 사림의 계보가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정몽주, 길재 등 온건파 사대부들이 조선 개창후 재야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모든 사림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김종직을 필두로 그의 제자들이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김종직은 성종대까지 산 사람이며 조의제문을 써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인물이기도 하다. 네번의 사화를 거치면서도 사림들은 지방의 세력기반을 바탕으로 꿋꿋하게 정계에 진출했으며 선조대에 이르러서는 자연스럽게 정계를 사림들이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선조대부터 학문적 기반에 따라 붕당이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그 흐름은 아래 그림에 간단하게 나와있다.

 

 

그림 2 붕당과 학파의 분화

이황과 조식은 영남학파라고도 하는데 기반이 영남지방이기 때문이다. 이황은 경북 조식은 경남, 그러나 둘이 한번도 만난적은 없고. 편지로만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이황보다는 조식학파가 실천을 강조했는데 이는 후학이 곽재우 정인홍 등 임진왜란때 의병장 출신이 많은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서인은 기호학파라고도 하는데 경기충청지방에 그 기반이 있기 때문이다. 동인보다 실제 현실에 더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는 (이이의 십만 양병설, 통치체제이 정비와 수취체제의 개혁 등으로 나타난다.) 이후 이이의 이통기국론과 관련해 인물성동이론에 관한 논쟁(호락논쟁)까지 이어진다. 또한 여기 있는 붕당이 전부가 아니고 이것저것 대북소북 청남탁남 등등 굉장히 많다. -_-;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념적 정치적 견해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 거의 다 그런식 나중에 좀더 따로 정치적 분화 과정과 이념적 차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써봐야겠다.)

 

시기로는 이황과 조식학파가 먼저 형성되고 이후 이이학파와 성혼학파가 형성되었다.

 

 

-이황과 이이의 비교

 

성리학은 주돈이로부터 시작해 주희에 의해 집대성 된 이기심성론 중심의 학문체계이다. 이와 기를 가지고 우주를 설명했다. 조선 성리학이 중국 성리학과 차이가 나는 것은 인간본성과 직접 관련되는 4단(인의예지) 7정(희노애락애악욕)과 같은 심성의 문제에 대한 탐구이다. 이황, 기대승, 김인후, 이항, 노수신, 이이, 성혼등이 이 사단칠정 논쟁을 함으로써 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으며 이는 16세기 철학논쟁이 전개되었다. 대표적으로 이황과 이이를 들 수 있다. 이 차이의 배경을 영남과 기호지방의 경제적 조건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영남은 자급자족적 지주기반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덕적 명분론이 필요했고, 기호지방은 외부세계와 접촉이 빈번하므로 가시적인 세계와 실리적 학풍에 민감했던 것이다.

(1)이황

이황은 이언적의 철학을 발전시켜 주리론을 수립했다. 이는 우주만물의 본질은 순수하고 착한 형이상의 이로 모든 만물은 그 점에서 착하고 평등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가 형이하로 발현되는 것이 기로, 기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불평등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원칙과 규범과 명분을 존중하는 학문으로 발전해갔다.  즉 만물생성의 원리인 이와 변화원인인 기가 상발한다는 이기호발설을 주장해 이와 기를 병존적 존재로 파악했는데(이기이원) 이를 주리론이라고 한다.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저술했다. 성학십도는 군주 가 스스로 성학을 따를 것을 제시하고 있다.

 

(2)이이

이이는 이황보다 한세대 늦은 학자이다. 따라서 기존 성리학 주장을 보완해 설명했다고도 볼 수 있다. 서경덕의 영향을 받아 형이하의 기에 따라 착해지고, 악해지고, 따라서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주장했다. 이이는 우주의 근본은 이일 뿐이며 원인인 능동적 기가 작용하면 부동의 기는 거기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이기일원론을 주장했다.  주기론으로 규정되기도 하며 실천적 행동철학이 된다. 이이는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의 저술이 있는데 이는 율곡집에서 묶어서 정리되어 있다. 성학집요는 현명한 신하가 성학을 군주에게 가르쳐 그 기질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성론

최초의 사단칠정 논쟁은 이황과 기대승이 시작했다. 이 사칠이기문답은 7년에 걸친 논쟁이었으나 상호 양보해 이황의 이기호발설 내지 이발기수설로 귀착되었는데 이황의 초기 입장은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기대승과 논쟁 끝에 사단은 이가 발하여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하고 이가 거기에 편승하는 것이다로 변하게 된다.

기대승은 사단과 칠정 모두 정이므로 기발로 봐야 되도 이와 기는 나눌 수 없으므로 사단은 이가 발하고 기가 따른다는 이황은 틀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율곡 이이가 보충 설명을 했는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뒤 측은한 마음을 발하므로 그 마음은 기이며 기발이라는 것이며, 측은한 마음의 근본은 인인데 이것은 심이 미발한 상태인 성이고 성은 이이므로 이가 여기에 타는 이승이다 라고 설명했다. 즉 사람의 원래 마음에 이가 있으나 기가 발해야 이가 올라탄다는 말로 기발이승일도설을 제기하여 이기일원론을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황이 주자성리학의 이해와 철저한 계승인 반면 이이에 이르러서는 문제점을 보완하여 이론적 심화하며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