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계사토픽2013. 5. 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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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각주:1]

 

제국주의 열강의 팽창욕은 아프리카 전체를 둘러싸고 전개되어 이와 같이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전역이 식민지화 되었다. 식민지화 이후의 아프리카는 크게 세부분에 걸쳐서 교과서에 등장한다.

1.세계대전 중심으로 한 열강의 세력 다툼의 한 일면 2. 2차세계대전 이후 독립과 제3세계 구축 3. 지역 분쟁과 내전. 이렇게 나눈 이유는 단순히 교과서에 등장하는 부분으로 나눈 것, 1960년이 될때까지 이집트, 남아공, 에티오피아, 라이베리아 외에는 독립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그전까지 크게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음.

 

1.19~20세기 열강의 각축장 아프리카

19세기말 유럽열강의 식민지 확대 경쟁으로 여러 국가의 충돌이 일어나 긴장 관계가 점점 증가했다. 네덜란드계열인 보어인과 영국은 지금의 남아공 지역에서 보어전쟁을 일으켰고(1899~1902), 횡단 정책을 추진하는 프랑스와 종단 정책을 추진하는 영국이 파쇼다에서 부딪쳐 파쇼다 사건(1898)을 일으켰으며, 3B 정책을 추진하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황제의 독일과 다른 열강들이 모로코에서 부딪쳐 두차례의 모로코 사건을 일으켰다. (1905, 1911)

제1차 모로코사건은 1905년 독일의 빌헬름2세가 프랑스의 세력권이던 모로코의 탕지르항을 방문해 모로코의 영토보전과 문호개방을 주장해 일어난 사건이다. 이로인해 에스파냐의 알제시라스에서 프랑스는 영국 및 여러 나라의 지원으로 우월한 지위 보장 및 독일의 양보를 받아낸 사건이다.

 

제2차 모로코사건은 1991년 모로코에서 내란이 발생해 프랑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자 독일이 모로코의 아가디로 항에 군함을 파견해 일어난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영국이 프랑스를 강력하게 지지했기 때문에 독일이 양보하고 프랑스가 ㅗ로코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이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대전이 발생하기 직전 이탈리아는 이토전쟁을 일으켜 트리폴리를 점령하기도 했다. 대전 중에는 아프리카 식민지의 인력과 물자도 전쟁에 동원되었다. 아프리카는 기간 산업(도로, 철도 등)이 부족해 200만명 이상의 아프리카 주민들이 군수품, 무기, 부상자 등을 운반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동아프리카에서 병사와 짐꾼으로 복무한 아프리카인이 10만 명 이상 되었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와 모로코는 중립국이었지만 대부분의 식민지는 점령국편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후 상황 정리를 위해 1919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의 원칙이 확인된다.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으로 민족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패전국인 독일의 식민지를 제외하고는 열강은 식민지를 대부분 그대로 보유했다. 실제로 베르사유 조약에서는 단순히 위임 형식으로 독일의 식민지를 재분할하기만 했던 것이다. 결국 콩고 이북의 독일 점령 지역은 프랑스가 가져 가게 된다. 이에 북아프리카에서는 제1차 세계 대전중 영국을 지원하였던 이집트가 독립 운동을 전개해 결국 독립을 하였으며(1922), 모로코, 튀니지 등도 독립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림 2. 1차세계대전후 아프리카의 민족운동. (더텍스트 세계사)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아프리카는 희생의 대륙이었다.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침공하고 독일은 이집트를 제외한 북아프리카를 점령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 예전 패배를 설욕하고자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는데, 이에 국제연맹이 비난하자 이탈리아는 바로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게 된다.

2차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카이로(1943.2), 얄타(1945.2), 포츠담(1945.7)에서 회담이 열리는데 카이로 회담에서는 일본이 침략하고 점령한 곳을 적당한 시기에 (in due course)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각주:2]

 

 

 

2.2차세계대전 이후의 아프리카

-세계 질서의 다원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열강은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유지하려고 했지만 미국과 소련은 민족 자결주의를 내세우며 식민지 유지를 반대했다. 이에 따라 전후 20년간 아시아에서 20개국 아프리카에서 33개국이 반제국주의, 반식민지주의를 표방한 신생 독립 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70년대 초에는 합쳐 70여개국이 넘었다. 이들 국가는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였으며, 빈곤한 개발도상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미소 양국 사이에서 중립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3세계, 또는 비동맹 국가라고 부른다.  

 

 이집트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공화국이 수립되었다(1952)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1956)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를 끌여들어 이집트를 공격하기도 했으나(제2차 중동전쟁) 국제 연합의 결의에 따라 철수했다. 이들 주변의 아랍문화권 나라 리비아(1951), 모로코(1956), 알제리(1962)등은 일찍이 독립을 달성했다.

뒤이어 1957년 가나가 독립한 것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의 해'라고 불린 1960년에만 17개 독립 국가가 생겼다. 이런 기세로 1963년 아프리카통일기구(OAU)가 조직되었다.

모잠비크와 앙골라는(1974~1975)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포르투갈이 이들 식민지를 본국의 연장이라고 주장하며 독립을 강력하게 억제해 뒤늦게 독립했다.

리비아는 1969년 극단주의적 민족주의자인 카다피가 정권을 잡고 독재를 행했는데 국제적 테러를 자행해 미국의 폭격을 받았다. 2011년에 반독재 시위가 일어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과도국가위원회 정부가 출범되어 활동중이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는 에스파냐가 광석자원이 풍부한 서부 사하라를 포기하자 이의 병합을 원하는 토착민세력과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치뤘다. 1988년 UN과 OAU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1990년대에도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제3세계의 5개국(인도,미얀마,인도네시아,파키스탄,실론)은 1954년 콜롬보에서 회의를 개최하고 평화 공존의 5원칙을 제시했다.

다음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반둥에서 열린 반둥 회의에서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29개국 독립국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국제적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평화 10원칙을 발표하고  상호 경제 협력을 체결했다.

점점 이들 국가의 수가 증가하면서 제2차 아시아 아프리카 회의(1957)때에는 40여개국이 참가하고, 제 4 차 회의(1973)에는 73개국이 참가했다.

또한 현대의 세계화와 지역화의 흐름은 아프리카에도 영향을 미쳤다. 경제적으로 세계의 각국은 지역별로 경제 블록을 형성했는데 아프리카에서도 남아프리카 관세동맹(SACU 1969. 남아공, 보츠와나, 레소토, 나미비아, 스와질랜드)가 결성되었다.

 

3.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현대 아프리카에서는 많은 내전이 일어났으며 아직도 진행중인 곳이 많다. 열강의 이간질적 식민 통치 및 지리와 환경 및 2000개가 넘는 부족, 800개가 넘는 언어 등 다원성을 무시한별 생각없이 자로 나눈듯한 국경선 분리에 대한 휴우증, 이슬람 극단주의의와 기독교의 대립같은 종교, 백인과 흑인이나 토착 종족간이라는 인종같은 사회 통합의 실패, 자원 문제로 갈등을 일으켜 발생했다. 또한 독립 후에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1인독재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자체적인 노력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국제 연합(UN)산하의 국제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는 등 해결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르완다에서는 1990년대 후투 족과 투치 족간의 분쟁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되었고,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지역은 벨기에가 통치하던 지역이였는데, 벨기에가 소수의 투치 족 지주가 다수의 후투족 영세농을 지배하도록 했던 것이 원인이다. 이후 1962년 르완다가 독립하면서 다수의 후투 족이 집권해 두 종족간의 분쟁이 반복되었다.

 

수단에서는 2003년 초 다르푸르 지역을 중심으로 북부 아랍계와 남부의 흑인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났다. 영국은 수단을 통치할때 북부 아랍계에게 정경권을 집중시켰고, 서남부의 흑인을 소외시켰는데 독립 후에도 이런 구조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분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오의 전쟁, 우간다 내전, 벨기에령 콩고인 자이레의 내전, 나이지리아의 내전, 짐바브웨의 내전끝에 얻은 독립(1980) 등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남아공은 오랫동안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악명 높은 인종 차별 정책으로인해 월드컵 대회 및 올림픽 출전이 금지된 나라일 정도로 인종차별이 심했다. 아파르트 헤이트는 사람을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 등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공공장소 출입과 편의시설 이용부터 교육, 주민등록, 거주 지역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정책이다.

1990년 국민당 정부(백인 정부) 구속 중인 만델라는 석방하고 4년만에 다인종 선거에서 승리해 백인 통치는 막을 내렸으며, 만델라가 이끄는 민족 회의는 수십 년 동안 인종 갈등을 치유하면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국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대한 해결책중 하나로 적극적인 과거사정리를 실시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참고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성공적인 케이스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흐름은 국가간의 빈부 격차도 확대시켰으며, 아프리카에는 가난과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 기아, 질병의 문제가 심각하게 퍼져있어 이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그림 4- 세계의 분쟁 지도

그림 5 - 세계의 기아 지도 아.. 아프리카여..  와중에 북한이 눈에 띈다. 전쟁, 기아... 남얘기가 아니다

  1. 세계사 교학사에 있는 그림. 근데 다른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 더 보기 쉬웠는데... 왜 현직학교교사만 교과서를 공유해주는거냐. ㅡ.ㅡ 빡침 [본문으로]
  2. 특히 카이로 선언에서 적당한 시기에 라고 하는 내용때문에 우리나라의 독립후 소련군과 미군정이 진주해 신탁통치안을 제시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얄타 회담은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을 결정한 내용, 포츠담 회담은 카이로 선언의 내용을 재확인 한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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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