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세계사토픽2013. 4. 17.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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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왕조와 악숨왕조가 아프리카의 고대 왕국중에서 눈에 띤다면 후에 나타나는 왕조들은 기록 문헌의 부족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개별적으로 다루지는 않고 크게 아프리카의 이슬람화, 사하라 교역권, 몽골제국의 교역망, 대항해시대의 발견 및 노예 무역의 활성화 등으로 다른 주제와 연관되어 나오는 구조로 되어 있다.(그렇다고 아프리카가 미개와 야만의 지역은 아니다. 각기 독자적인 도시 문명을 꽃피웠다.) 

이후에 제국주의에 맞선 아프리카의 대항과 함께(그나마 이것도 교육과정이 점차 바뀌면서 제국주의 열강의 아프리카 점령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서술하던 분위기에서 좀 벗어난 듯 하다.) 열강의 아프리카를 대하는 이중적인 면, 이후에 세계대전을 겪은 후의 아프리카로 크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아프리카의 이슬람왕조.

북부 아프리카는 기존의 지중해 문화권과도 근접한 영역으로 이집트 문명이 발전하는 등 서양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특히 7세기 급속적으로 팽창한 이슬람 세력은 중동지방 뿐만 아니라 북부 아프리카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했다. 오늘날에도 북부 아프리카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이 대다수 인듯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다.

2.사하라 횡단 교역(금, 상아, 소금, 노예)과 이슬람화

(1)사하라 횡단 교역

기원전에 시작된 사하라 횡단 교역은 이슬람교가 사하라 이남까지 전파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를 통해 이슬람교와 토착 문화가 만나 독특한 문화를 이루었다.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상인들은 금과 상아를 찾아 낙타를 이끌고 오아시스에서 오아시스로 옮겨가며 사하라를 가로질러 갔다.아프리카 사하라 교역권의 주요 물품은 금과, 상아, 소금, 노예이다. (주로 낙타를 이용해 운반. 낙타 2000마리 행렬의 대상인도 있었따는)

금은 사하라 너머 가나와 세네갈, 나이저 강 일대에서 생산 되었으며,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제노바를 거쳐 북유럽까지 운반되었으며, 이러한 금에 대한 수요는 기존 아프리카 인이 구리로 장신구를 선호한 것을 금으로 바꿨다.

상아는 서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에서 상아 세공업이 발달하면서 거래가 활기를 띠었다. 10세기에 인도와 중국인도 가공하기에 좋은 아프리카산 상아를 수입하면서 수요가 늘었다.

소금음 채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수품이었다. 소금은 금이나 곡식으로 교환되었다.

이슬람 상인은 노예도 잡아서 거래했다. 흔히 노예무역은 대항해 시대 이후 유럽인들에 의해 대거 자행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전부터 아프리카 노예를 잡아다 거래했다.  아프리카의 노예는 주인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지을뿐 신분상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그같은 이유로 아프리카 인은 다른 지역의 노예가 얼마나 가혹한지 모르고 상인들에게 노예를 넘겨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노예로 잡힌 아프리카 인은 사막을 걸어서 카이로의 노예 시장으로 팔려나갔다.

 

(2)이슬람 문화와 토착 문화의 결합 (모스크 설립, 스와힐리어 등)

아프리카의 지배층은 권력 강화, 교역 증대, 전문 인력의 확보 등을 목적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모스크와 대학을 설립해 아랍어를 배우도록 장려했다. 이는 지배층은 이슬람 문화, 하층민은 토착 문화를 유지하는 이원적인 체계를 가지게 했다.

사하라 횡단 교역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은 서아프리카의 가나왕국 등이 성장하게 했고 도시도 발달시켰다. 11세기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는 11세기 후반 무라비트 왕조, 12세기 전반 무와히드 왕조같은 이슬람 국가가 등장해 사하라 사막 이남에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무라비트 왕조가 가나 왕조를 무너뜨리고 서아프리카의 이슬람화가 촉진되어 말리 왕조, 송가이 왕조같은 이슬람 국가가 등장했다. 13세기 등장한 말리 왕조는 선진적 이슬람 세계의 법률, 행정, 언어등을 받아들였고 사하라사막 교역로를 장악했으며 이후 중남아프리카에도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각주:1]

동부아프리카는 이슬람 상인을 중심으로 거류지가 형성되었다. 모가디슈, 몸바사, 잔지바르, 킬와, 모잠비크 등의 동남부 해안 도시들은 인도양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다.

이슬람 문화의 풍경은 이슬람 신학자들이 코란을 연구하기 위해 학교를 100개 넘게 세웠으며,[각주:2] 아프리카 건축 기술과 이슬람 문화의 결합인 모스크가 세워졌다. 또한 동아프리카 해안에 인도양 무역권에 이슬람 상인들이 드나들었으며, 이슬람 상인들을 중심으로 이슬람교가 퍼져 나가 스와힐리어가 만들어졌다.  후에 동남아시아와 중국 상인들도 왕래하면서 독특한 문화가 나타났다.

 

 

 

 그림 1 아프리카의 이슬람화 - 출처, 금성출판사 세계사(폰카로 엉망으로 찍어서 엉망이네);;

 

 

지금은 아프리카의 사하라 교역과 이슬람화에 대해서만 썼는데 간단하게나마 좀더 알고 싶으면 www.africamuseum.or.kr 에 소개된 것 참조해도 되며, 깊게 알고싶으면 도서관에 아프리카사 책을 참고해야 될 듯.(몇 없지만.)

 

 

 

그림 2 -이븐 바투타의 여행경로.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14세기 이슬람의 입장에서도 잘 서술해 놓아 사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와 비교되는 건 마르코 폴로는 이슬람과 인도지역을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르코폴로는 초원길과 비단길로 중국을 다녀왔지만(돌아올때 뱃길이용) 이븐 바투타는 아프리카, 서아시아. 인도, 동남아. 중국을 거쳤다.

  1. 그러나 사하라 이남 지역의 이슬람교는 일부 지배층의 종교이며 토착 종교가 대부분이긴 하다. [본문으로]
  2. 이븐 바투타는 중국 등지도 여행했지만 사하라 사막을 지나 말리 왕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여행기"에서 말리의 토착 문화와 이슬람 문화를 묘사했다. 이븐 바투타는 서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뱃길로 동아프리카의 무역 거점을 비롯해 비단길과 인도 뱃길로 원의 수도인 대도까지 여행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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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