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 2
출제 의도: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 내용을 알 수 있다.
해설 :
보기의 키워드로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세운 비석. 그리고 서양 세력이 침입하면 싸우겠다는 글(정확히는 화친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적었음) 두 가지 키워드로 보았을 때 '척화비'가 답이다. '척화'라는 단어는 친하게 지내는 것을 하지 않는다(배척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친하게 지내지 않고 싸운다고 보기에 있으니 척화비임을 알면 되겠다.
흥선대원군에 대한 문제. '대원군'이라는 명칭은 아들인 고종이 왕에 오르게 되면서 왕의 아버지에게 붙는 칭호를 보통명사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아이러니한 말인게, 보통 왕조국가에서 왕이 죽어야 아들이나 손자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로는 대원군이라는 말이 성립이 될 수 없는 것. 물론 아들이 없이 죽은 왕같은 특이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 이외에도 대원군이 몇 명 더 있다. 그러나 살아서 대원군이 된건 흥선대원군이 유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이라는 인물이 나온 것 자체가 조선 왕조에서 역사적인 기록이라 할 만함.
고종의 아버지 인데 어떻게 대원군이 될 수 있었냐면, 당시 궁중에서 가장 어른이었던 조대비(순조의 며느리 =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왕이 되지 못하고 죽음)의 세자비 = 헌종의 엄마 = 왕의 엄마 인 대비) 주변을 포섭한 후 조대비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위에 지명해달라 딜을 했기 때문. 결국 이해관계가 맞아서 조대비가 흥선대원군(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을 왕으로 메이킹하면서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 된 것.
그러나 고종이 왕위에 즉위했을때에는 12살이었으므로 흥선대원군이 실제 정치권력을 장악했는데,
안으로는 세도정치 타파, 밖으로는 서양 열강의 침략(대표적으로 1842년 아편전쟁,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에서 대패한 청나라가 있음) 에 맞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결국 흥선대원군은 내부적으로는 개혁정치를 실시하고, 외부적으로는 쇄국정책을 실시해 빗장을 걸어 잠그는 정책을 실시하게 됨.(그러나 처음부터 외세를 배척하려고만 한 것은 아니고 어떻게 이용해볼려고 하다가 실패하니까 태세변환으로 후드려 팬것)
기타 추가 설명: 인물 문제로 하면 이 시기에 나올 만한 인물도 흥선대원군만큼 상징적인 인물을 찾기 힘들다. 다. 물론 난이도가 올라가면 19년 문제처럼 헤이그 특사 문제가 나올 수도 있지만, 아니면 동학농민운동 문제의 전봉준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 내용 같은 경우는 하나씩 정리를 해 두는 것이 좋고, 개혁과 관련된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를 모두 알아두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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