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문사료2013. 4. 3.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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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啓言 帽子廛市民 康德一等原情 以爲渠廛行貨之物貨卽各色香三升氈軸帽子針子等諸種而針子一種近爲床廛人所盜賣

蓋床廛人符同本署書員 偸竊市案 刀擦床廛物貨中貫子之貫字冒錄渠廛物貨中針子之針字事竟發覺…

床廛人反生利之計屢訴本署而有反案之題則稱以亂廛無慮四五百人持木椎喊突入無論老少見輒亂打…

 - 일성록, 정조12년(1788) 9월 4일 임술

以爲: ~라 만들다 , ~라 생각하다.

原情: 사연을 하소연함

竊:훔칠 절 刀擦: 잘못된 것 따위를 칼로 긁어 냄

 

 

-해석 우계가 말하길: 모자전 시민 강덕일등이 원정하길, 거모전에서 바로 각색향, 삼승, 모전, 모자, 침자 등의 종류를 팔고 있습니다. 그러나 침자중의 한종을 요근래 상전인이 훔쳐팔은바,  상전인이 평시서와 짜고 덮었으며, 시안을 훔쳐다 상전인의 물건중에 관자의 관자를 파내고 저희 물품중의 침자를 모록했고, 일이 알려졌습니다.

상전인은 도리어 이익을 도거리할 계책을 내어 본서에 누차 호소하고 번안하는 제사가 있자 바로 난전이라고 칭하고 무려 4,5백명이 나무몽둥이를 들고 고함을 지르며 안으로 돌진해와 늙고 어림을 막론하고 마구잡이로 때렸습니다.

 

-일성록은 왕의 입장에서 일기를 기록한 것으로 사적인 문서같지만 국가의 공적 기록물이다. 정조대 문화진흥정책 차원에서 추진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판본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껄?, 영조때부터 고종때까지의 기록이 담겨져 있다.

-윗글은 일성록에 나와있는 한 소송에 대한 이야기이다. 일성록은 아직 인터넷사이트에서 원문을 볼 수는 없고 국역으로만 한국고전종합DB에서 서비스중이다. 뭘 얘기하는지 알겠지만 해석하기는 어렵구나. ㅜㅜ.

 

-이 이야기는 정조가 신하들로부터 소송이 올라온 것에 대해서 보고 판결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조선시대의 전반적인 상업구조의 흐름부터, 육의전 및 시전체제와 이에 맞서 수공업과 상업의 발전으로 나타난 여러 종류의 난전들, 다시 금난전권으로 난전을 금지하고, 시전상인들이 금난전권을 남용하여 사상들및 국가가 시전상인을 통제하는데 애를 먹자 결국 신해통공으로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흐름과 함께 난전의 종류, 신해통공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조선은 초기부터 국역(國役)을 부담하는 육의전과 시전 상인에게 그 보상으로 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고, 이 규정을 어기고 마음대로 상행위를 하면 난전이라 하여 금지시켰다.[각주:1] 즉 직역의 대가로 특권을 가진 상인이 아니면 모두 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생겨난 난전의 종류를 굳이 구별하자면

1.서울의 교통의 요지인 남대문 밖 칠패, 이현등의 새로운 시장들.

2.사상도고가 연 서울 외곽의 송파, 동작직,노원점,송우점 등. 삼남 동북지방에서 올라운 상품을 매점하여 서울 성안의 난전 상인에게 넘기는 행위

3.지방의 사상(송상만상등)

4.군병 및 각 영문의 비특권적 수공업자와 권세가와 그들의 가노, 관아의 저리등이 연 난전층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봉건 특권층과 결탁해 난전을 열고 시전상인들에게 타격을 입히는 행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시전상인들의 상소로 금난전권이 부여되었다. 그런데 금난전권은 소상품 생산자와 소상인층의 자유로운 성장을 가로막았으며, 이로 인해 나타나는 물가고로 도시 빈민층의 피해가 컸다. 이러한 유통 질서 문란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롭게 상품을 매매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였다. 그리하여 1791년(정조 15년) 좌의정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주창에 의해 30년 이내에 설치된 시전을 폐지하고,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는데, 이를 신해통공(辛亥通共)이라 한다. 이에 사상인층에 의해 주도된 조선 후기 상품화폐 경제가 발달하였다. [각주:2]

시전상인들도 그들은 국가에 대한 직역의 부담이 있는 가운데서 난전이 마구 성행하자 아예 그들과 경쟁하더라도 직역에 대한 부담을 떨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난전은 조선 후기에 성장한 비특권적인 수공업자와 상인에 의해 봉건적인 상업 구조가 허물어지던 도시 상업 발전의 반영이었다. 통공발매 정책은 기존의 봉건적 제도로는 이러한 상업발전을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성과도 거두었는데 시전상인에 의해 일어나던 인플레이션의 저지와 도시빈민층, 영세상인, 소생산자가 보호받을 수 있었으며 상업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다른 난전에 대한 사료

諸廛旣有分役, 且是都民恒業之所係. 故各廛物種之非廛人而私自買賣者 許令廛人捉納法司 謂之亂廛. 正宗辛亥 蔡濟恭啓曰, 近來遊手之輩自作廛號 人生日用物種 無不都庫. 凡物之貴五倍於昔. 請零瑣新設之廛號 一並革罷, 六矣廛外勿許亂廛.

甲寅 左議政金履素建白 以內魚物廛靑布廛降付六矣之外 以布廛陞付矣. 當宁辛酉 沈煥之捧甘平巿 以內魚物廛復陞六矣 亂廛復舊 與外魚物廛合爲一矣. 布廛則與苧布廛合爲一矣. 以備六矣之數.

『萬機要覽』, 財用編5, 各廛, 亂廛

輩: 무리배 零瑣: 자질구레하다 . 영쇄 捧甘 : 봉감하다. 상부서에서 하부에 문서를 내리다.

 

해석:모든 시전에는 각기 나눠진 역이 있으며, 옛부터 도민은  항상그 업이 전해져 왔다. 그러므로 각 시전물건종류를 비시전인이 사사로이 방매하는것은 시전상인이 법사에 잡아들일 수 있게 했으며 이것을 난전이라고 한다. 정종신해년에 채제공이 일러말하길 근래 떠돌아니는 무리들이 스스로 점포를 열어 생활용품을 도고하지 아님이 없습니다. 물건이 다섯배나 귀해졌습니다. 청컨대 자질구레하게 새로 만드는 점포는 모두 혁파하고 육의전 외 난전을 허하지 마옵소서(이게 육의전 외 금난전권을 폐지한 것인지? 아니면 육의전 외 모든 시전을 없애버린것인지. 그래서 형식적으로 육의전만 금난전권이 있는 정식 시전이고 나머지 시전이 없어진 것인지. 즉 육의전만 금난전권이 남고 나머지는 시전이 아니기 때문에 금난전권이 없어지는 신해통공이 되는건지 판단이 안되네.)

정조18년 좌의정김이소가 건의하여  어물전청포전은 육의전 외으로 내리고, 포전은 올려붙였다. 순조1년 심환지가 평시서봉감해 어물전을 다시 육의전으로 올리고 난전을 다시 복구해 외어물전과 합해 1주비를 만들었다. 포전은 바로저포전과 합해 1주비를 만들었다 이로서 육의전의 수가 되었다.

 

이 사료는 서영보(徐榮輔, 1759~1816)·심상규(沈象奎, 1766~1838) 등이 왕명에 의해 저술한 『만기요람(萬機要覽)』재용편(財用編)에 기록된 난전(亂廛)에 관한 내용이다. 난전은 조선 후기 전안에 등록되지 않거나, 허가된 상품 이외의 것을 몰래 파는 가게를 말한다. 난전은 조선 후기 상업 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비시전계(非市廛系) 사상인(私商人)이 상업 활동을 하여 봉건적 상업 구조를 어지럽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 금난전권의 주체(?)인 시전특권상인층은 노론벌열과 결탁한 계층이었기 때문에 탕평을 위해서는 이들을 저지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남인소론들은 소상인과 수공업자들을 배려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본문으로]
  2. 금난전권을 혁파하려던 논의는 이전부터 1764년(영조 40)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이 때를 전후하여 금난전권을 제한하려는 통공발매의 이론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통공발매론은 1787년(정조 11)에 일부 시행된바, 이를 정미통공(丁未通共)이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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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
교육학/논제2013. 4. 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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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정의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정범모와 피터스가 정의하는 교육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교육의 정의는 그 근거(규범)가 뚜렷하고 정의가 확연하게 대조적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이들의 교육의 정의와 그렇게 규정하게 된 규범, 그리고 이 두가지 교육관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아두면 될듯.

 

1.정범모의 교육의 성립조건

(1)교육의 정의

정범모는 교육을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교육을 관찰자점 관점에서 조작적 기술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간단명료하게 이 명제에 준거가 모두 담겨있다.

 

(2)교육의 개념적 준거 '인간행동'으로 범위를 정해 '변화'를 지향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교육.

㉠인간행동: 교육이 갖는 구체적 대상의 범위를 결정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 행동은 단순히 행동주의에서 말하는 자극에 대한 반응(외현적, 표출적 행동)이 아니라 지식, 사고력, 태도, 가치관, 동기, 성격, 자아개념 같은 내면적, 불가시적 행동이나 특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행동이라고 새롭게 정의한 것인데, 그 근거는 교육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고 할때 '인간행동'으로 구체화 되어야 하고, 기존의 일상적, 행동주의적 방식으로 '행동'이 규정되기보단 새롭게 과학적으로 규정되야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변화: 일차적 관심

정범모는 '변화'가 다른 학문과 교육학을 구별하는 핵심 준거라고 했다. 여타의 사회과학은 대상을 '설명'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면 교육학은 학문의 문제의식이 '변화'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즉 학문의 일차적 목표가 '변화'라는 것

 

㉢계획: 경로

계획적. 즉 인간의 변화가 교육이냐 아니냐를 판단할때 중요한 것은 사전에 계획되었느냐의 여부이다. 즉 단순화 하면 계획되지 않았으면 성숙. 계획되었으면 교육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의 계획이 성립되려면, 교육목표, 교육이론,교육과정이라는 세가지 준거를 가지고 있어야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변화를 위한 교육목표,이론,과정을 수립해 행동의 변화를 의도하는 것만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

정범모의 교육에 대한 정의는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평가받는다. 1. 개념자체의 정의에 대한 평가. 2.교육 실제에 가져온 결과의 측면 3. 정의에 들어 있는 전제의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2.피터스의 교육 개념 준거

과학적으로 교육을 설명하려고 한 정범모와는 달리 피터스는 교육을 내재적 가치실현과 '마음의 획득 혹은 계발'로 규정한다.(피터스가 교육을 정의한 말이 여러가지지만 대체적으로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렇다.) 즉 교육을 유용성 혹은 실제적 효과와 관련해 수단적 혹은 외재적으로 파악하려는데 대반 반발에서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피터스의 준거도 크게 세가지를 말할 수 있다.

㉠규범적 준거

피터스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내재적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교육이라는 말에 가치있다. 바람직하다. 좋다라는 규범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내재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 따라서 이러한 내재적 가치 외에 외재적으로 규정되어선 곤란하다.

 

㉡인지적 준거 - 지적, 이해, 인지적 안목

피터스는 교육은 지식과 이해 그리고 모종의 인지적 안목을 포함해야 하고, 이러한 것들은 무기력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다른말로 이것은 우리가 배우는 지식, 정보, 사실 등이 서로 유리되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단순히 정보를 합친것 이상으로 통합된 안목을 길러야 한다.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제한된 일이 아닌 삶의 정연한 패턴 속에서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따라나오는 헌신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즉 실용적인 지식, 부분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할 줄 아는 인지적 안목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것 같다.

 

㉢과정적 준거

교육의 과정이 되기 위해서 피터스는 외부의 필요에 의해 실시되는 것이 교육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온당한 방식으로 가르쳐야 하며' 학습자가 흥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조건화나 세뇌는 교육이 아니다.

피터스의 교육개념에 대한 평가는 개념에 대한 측면, 교육에 주는 영향에 대한 평가, 교육 개념에 전제된 교육관에 대한 평가이다. 정범모의 교육정의에 대한 평가의 기준과 비슷하다.

 

피터스는 교육의 개념을 명료하게 밝혔지만, 준거의 타당성 문제, 교육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비판문제, 교육의 개념과 교육받은 사람에 대한 혼동문제가 제기된다.

피터스가 제시한 방법적 준거(과정상의 준거를 의미하는 듯함)는 인지적인 준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비판이 있으며,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외재적 가치와 구분이 뚜렷한 것인가, 또한 교육의 내재적 가치가 지식, 이해, 인지적 안목에 한정되어있는가 하는 비판. 그리고 지식의 이해와 인지적 안목이 형성된 상태는 교육이라기 보다 '교육받은 인간'으로 규정되야 한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피터스는 지식, 이해 인지적 안목의 개념에서 교육을 파악해 주지주의적, 엘리트주의적이라는 입장을 대변한다고 비판받아왔다. 즉 정서적인 면보다는 지식의 추구와 관련해 생각함으로써 인간의 정서,태도,행위,욕구 등을 무시했다. 그러나 이에대해 피터스는 정서는 인지적 측면을 떠나서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러한 피터스의 관점은 교육과 실제 삶이 유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마지막으로 피터스는 분석철학의 방법을 제시하여 교육의 가치를 제시하려고 했으나 분석철학의 방법이 중립적이기 때문에 교육의 가치를 제대로 피력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3.교육과 구별되는 비슷한 용어들

교육,

훈련, :가치중립적인 기술의 변화. 

교화, : 객관적 증거없이 신념이나 가치를 믿도록 하거나 제시된 신념을 합리화 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것

교도 : 비정상적인 상태의 사람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환원시켜 주는 것.

문제: 교육은 가치기업이라고 불리울 만큼 가치내재적 활동이다. 다른한편 교육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두 관점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고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논술하시오.

책에 나온 문제가 이렇게 되어있는데, 먼저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 가치내재적 활동이라는 주장이 각각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라는 것인지. 이런 대립되는 의견이 나오는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라는 건지 서론에서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할 듯 하다. 일단 안전하게 정범모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 피터스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을 논하고 의미를 논한 후에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논해야겠지.?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는 않지만, 일단은 정범모의 정의의 문제점과 피터스의 정의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 논하고 이를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게 보통의 평범한 답 듯 하다. 즉 가치를 가지지만 지식의 문제에 한정되지 않은 활동들을 교육과정에 대거 포함시키는 듯한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서술한 후에 이에대한 문제점과 보완 방법(교과내용의 수립, 진행, 평가까지 일관된 방법의 실행)까지 논한후에 결론으로 마무리 지은다면 일단 무난한 답안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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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
취미/스뽀오츠!2013. 4. 1.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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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디스크 초기에서 중기로 가는것과 함께 요즘 이상하게 허리디스크의 증세도 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와 진짜 관절하고 척추가 성한데가 없다. 난 젊은데... 큰일이다.) 코어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예전에 웨이트할때 데드하고 스쿼트 열심히 했는데 왜 이모양이 됐지. 스쿼트는 그렇다치고 데드는 좋아하는 운동이라 빡세게 했는데. 아 이젠 웨이트에 대한 기억도 가물하다.

 

아무튼! 내가 산 요가매트는 이것.

 

그냥 싼맛에 pvc 요가매트를 구입하려다 땀나고 이러면 답안나온다고 해서 몇천원 가격이 더 나가는 NBR이라는 소재의 요가매트를 구입했다.

내가 산거는 10mm의 두께인데. 너무 얇아도 두꺼워도 안좋다고 해서 중간짜리 두께를 샀음!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코어운동 빡세게 해서 척추의 균형을 다시 되찾고 말겠어!!!!!  잃어버린 내 척추건강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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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