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한문사료2013. 4. 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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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宗武烈王立 諱春秋 眞智王子 伊湌 龍春 一云 龍樹 之子也. 唐書 以爲 眞德 之弟誤也. 母 天明夫人 眞平王女 妃 文明夫人 舒玄角湌女也. 王儀表英偉 幼有濟丗志事 眞德位歷伊湌  唐帝授以特進 及 眞德薨羣臣請 閼川 伊湌攝政 閼川 固讓曰 臣老矣無德行可稱 今之德望崇重莫若春秋 公實可謂濟世英傑矣 遂奉爲王 春秋 三讓不得已而就位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권 태종무열왕전

 

해석: 태종무열왕이 왕이에 올랐으니 이름은 춘추이다.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혹은 용수라고도 한다. 당서 진덕왕의 동생이라 하였으나 오역이다.)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천명부인이고 진평왕의 딸이다. 왕비는 문명부인으로 각찬 서현의 딸이다. 왕의 의표는 영위하였으며 어릴때 세상을 다스릴 뜻이 있었다. 진덕을 섬겨 이찬을 역임했고 당나라 황제가 특진을 제수했다. 진덕여왕이 죽은뒤 여러 신하들이 알천이찬이 섭정할것을 청했다. 알천은 굳이 사양하며 말했다. 신은 늙고 이렇다 칭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의 덕행이 높은건 춘추만한 이가 없으니 실로 세상을 다스릴 만한 인물이라 할수 있습니다. 마친내 춘추가 왕에 봉해지고 세번 사양끝에 왕위에 올랐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를 기초로 한 폐쇄적 신분사회였다. 폐쇄적 신분사회일수록 특권층을 적게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는 6세기 이후 신라의 발전과정에서 골족이 성골과 진골로 나뉜것으로 알수 있다.(6세기 현 왕가가 다른 왕족과 차별하기 위해 성골을 만든것으로 파악됨)결국 7세기에 이르러 성골남자가 소멸하게 되어 선덕,진덕왕이 즉위하기에 이른다.[각주:1] 이후 즉위한 무열왕 이후 그의 직계 자손이 왕위에 올라 왕권의 전제화를 진행하게 된다.[각주:2]  따라서 김씨 왕족은 왕권 옹호 세력으로 변질되고 박씨 세력과 가야 및 고구려계 귀족은 점차 정권에서 소외되고 진골 귀족에게 억눌려있던 6두품 계층이 대두된다.[각주:3]

 

  1. 한길 골품제 [본문으로]
  2. 한통p123 [본문으로]
  3. 7차 국사 p6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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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런닝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