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大對盧, 則以彊弱相陵, 奪而自爲之, 不由王之署置也.
-주서, 이역열전, 고구려
其國建官有九等, 其一曰吐捽.比一品, 舊名大對慮, 惣知國事, 三年一[伐=>代]、若稱軄者不拘年限、交替之日. 或不相服, 皆勒兵相攻,勝者爲之. 其王但閇宮自守,不能制御. 次曰太大兄、比二品,一名莫何何羅支. 次折, 比從二品, 華言主薄. 次大夫使者,比正三品, 亦名謂謁奢. 次皂衣頭大兄, 比從三品:一名中裏皂衣頭大兄 .....以前五官, 掌機密謀[改=>政]事.徵發兵,選授官爵
-한원, 번이전, 고구려중
해석: 1.그대대로는 강하고 약함으로 서로를 넘었으며 빼앗아 스스로 대대로가 되었다. 왕의 임명에 말미암지 않는다.
2.그국가는 관등을 구등을 지었다, 그 일은 토졸. 일품에 비한다. 옛명칭은 대대로다, 국사의 전반적인 것을 총괄한다. 삼년에 한번 임명한다. 만약 직위를 칭한자가 연한을 지키지 않으면 서로 바꾼다. 만약 불상복시 서로 병사를 일으켜 이긴자가 그것이 된다.(의역죄송 -_-;머리가 아파서.;) 대대로는 단지 궁문을 스스로 닫을 수 있으나 왕을 제압하진 못한다. 다음은 태대형이며 이품에 비한다. 막하하나지라고도 하고 다음 종이품에 비한다.중국말로 주부라고 한다. 다음은 대부사자이다. 정삼품에 비한다. 역시 갈?라 한다. 다음조의대대형이고 종3품에 비한다. 이명 중의조의두대형 ,.... 이 앞선 다섯관등으로 정치기밀을 장악하고 징병하고 관작을 선택해 받을 수 있다.(거칠은 해석 ㅈㅅ -_-..) 대충 핵심 내용은 대대로가 국사의 전반적인 것을 총괄하며, 삼년에 한번 선출하는데 귀족끼리 다퉈서 승리하는 자가 대대로가 되기도 한다. 왕에 버금가는 권력이지만 왕보다는 아래이다는 것이며, 그리고 다음 관등 쭈욱 나오다가 여태 설명한 5품까지 지방태수가 되서 정병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말로 생각됨.
-이를통해 대대로는 귀족들의 연합정치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권력이 왕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화 : 고구려는 가장먼저 강력한 왕권을 수립하고 고대국가로 발전했다. 그 근거로 고구려는 계루부의 고씨가 세습적으로 왕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제로 바뀌는 등 왕권이 공고해졌음을 알 수 있다. 부여와 비슷하게 고상가, 고추가 등 대가들이 있었으며(위지에 나오는 것은 대가들인 듯. 대가들과 대가들의 관직명이 그대로 관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각 부마다 자체적으로 사자, 조의, 선인 등의 관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2.귀족연합기의 정치 : 기존의 5부의 족장들은 귀족으로 전화하여 고위관직에 임명되고 정치에 참여했다. (즉 귀족의 행정관료화가 이루어졌다.)왕족인 계루부가 제1귀족이 되었고, 소노부와 절노부의 대가들이 고추가의 존칭을 받고 귀족신분의 중심을 이루는 등 왕과 귀족이 연합해 정치를 주도해나갔다.
3.관등조직: 고구려는 가장 먼저 관등조직을 성립시켰다. 고구려의 관등조직은 시대에 따라 변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그 근거는 중국의 사서들에서 고구려의 관등체계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표로 적으면 다음과 같다.(한통p.97 및 삼국사기 잡지 베꼇음 ㅡㅜ)
〈표 1〉 고구려 관등조직표
魏 志 |
周 書 |
隋 書 |
新 唐 書 |
翰 苑 |
三國史記職官志 |
상가(相加) 대로(對盧) 패자(沛者) 고추가(古雛加) 주부(主簿) 우태(優台) 승(丞) 사자(使者) 조의(皂衣) 선인(先人) |
大對盧 太大兄 大兄 小兄 意俟奢 烏拙 太大使者 大使者 小使者 褥奢 ,屬 仙人 褥薩 (13등) |
太大兄 大兄 小兄 對盧 意侯奢 烏拙 太大使者 大使者 小使者 褥奢 ,屬 仙人 (12등) |
大對盧 鬱折 太大使者 ,衣頭大兄 大使者 大兄 上位使者 諸兄 小使者 小兄 仙人 古雛大加 (12등) |
大對盧(吐卒) 太大兄(莫何何羅支) 鬱折(主簿) 大夫使者(謁奢) ,衣頭大兄(中裏,衣頭大兄) 大使者(大奢) 大兄(,支) 拔位使者(儒奢) 上位使者(契達奢使者, 乙奢) 小兄(失之) 諸兄(,屬, 伊紹, 河紹還) 過節 不節 先人(先元, 庶人) (14등) |
狄相:(奈麻) 小兄:(大舍) 諸兄:(舍知) 自位:(烏知) |
초기국가 시절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대로 상가 등 10개 관등이 마련되었다가 점점 주서의 13관등 수서의 12관등, 당서의 12, 한원의 14관등으로 점차 정비되어 갔다. 이러한 관등은 고대국가에 들어와 대가 세력을 왕권 아래 통합 분화정비 시킨 것이다.
(1)형과 사자의 차이: 고구려 관등에서 특징적인 것은 兄 계열과 使者 계열로 관등이 분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형'은 연장자 내지는 가부장적 족장의 뜻을 가진 것으로 종래의 족장세력이 집권적인 왕권 아래 통합 편제되어 있는 것이고 사자는 원래 조부를 걷어들이는 사람의 뜻을 가지는 것으로 행정적인 관리출신이다. 고구려의 관등은 이 두 계열이 하나의 관등체계 안에 편성되어 있는 특징이 있다. 시대가 변할떄마다 형과 사자계열 관등이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는 고구려의 정치권력의 변동하고 관련이 있다. 즉 수서가 기록하고 있는 6세기 무렵엔 사자계 계열이 관등이 높은 것으로 보아 왕권이 강력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2)귀족연합적 성격: 형과 사자계 계열이 번갈아가면서 관등이 조직되었어도 1품관등은 대대로이다. 이는 대대로가 수상으로서 국사를 총괄했고, 귀족들에 의해서 선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맨위 사료 참조). 이것은 귀족의 합좌제도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고구려는 제가회의)이고 당시 정치가 귀족연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 제5관등인 조의두대형 이상만 국가 기밀사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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