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논제2013. 4. 17. 19:46
728x90

1.생태주의

(1)의미

생태주의는 기존의 환경주의에서 더 급진적인 사고방식으로 기존의 환경주의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고, 현재의 환경문제를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었다면 생태주의는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원래 가지고 있던 환경, 가치 등을 조화롭게 생각하는 사고이다. 즉 환경주의가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한 부분적 처방이라면 생태주의는 보다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원인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생명주의, 자연주의, 생명사상 등의 말과 혼용하여 쓰이기도 한다.

생태주의적 교육관 또한 이러한 생태주의적 사고 체계로부터 학습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 및 생태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여 교육현상을 새롭게 평가하고 해석하려는 패러다임을 의미한다.

 

(2)전통적 과학주의 교육관

과학주의 교육관은 과학기술의 합리성과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적 존중으로부터 나온 근대적 합리주의 정신에 터전을 두고 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및 보편적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법칙의 절대성을 인정한 기반 위에서 출발하는 교육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교육관은 교육의 주된 관심이 '개인의 이성적 사고능력의 발달'과 '보편적 지식의 가치전수'에 두고 있으며, 항존주의나 본질주의 사상과 연관되어 있다.

 

(3)생태주의 교육관

지식 중심이 아닌 학습자에게 집중해 학습자의 주체적 역할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의 계발과 습득을 강조한다. 즉 학습자의 소질, 잠재능력 개발을 위한 것이다. 개성과 개인차가 존중되며 학습자의 특이한 경험과 심리가 중시된다. 실천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실천 지식 습득과 노작교육, 사회공동체와 자연과의 조화, 자연생태계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가치관과 행동요령을 숙지시킨다.

 

2.홀리스틱 교육(검색엔진에 홀리스틱을 치면 죄다 개사료만.... 그래 뭔가 어울리는군.)

 

(1)기본전제와 학생관

holistic 은 기본적인 뜻이 전체적인, 전체론의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즉 생태계 전체적인 사고방식을 의미. (단순히 전체주의적인 사고가 아닌 생태계에 속한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이들 부분들로 전체를 본다는 의미로 생각해야 한다.) 홀리스틱 교육은 생명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으며, 인간의 신비한 생명은 육체, 마음, 지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의 존재를 인정하고 상호간에 존중하여야 함을 의미하며, 건강은 생명의 전체적인 조화 상태이고, 치유는 그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 즉 생명의 전체적 조화와, 생태계를 전체적 관계망으로 보는 생태주의관에서 나온 교육관과 흡사하다.)

따라서 학생 개개인도 자연의 일부로서 지적,창의적, 체제적 사고에 타고난 잠재성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에는 이른바 '위기에 처한 학생들'이 포함되며, 이 학생들 대부분은 선형적,계열적 과정에 역점을 두는 기계론적 환원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심각한 학습장애를 안고 있다.

 

(2)홀리스틱 교육의 특징

홀리스틱 교육은 생태계를 소중히 여기며 아끼고 보호하는 실천력을 갖춘 사람, 생태학적 소양과 견해를 가지고 실천하는 민주시민의 육성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교수-학습 과정의 능동적 참여와 개인적, 집단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포함된다.

전인적 발달(계발) 중시: 어느 특정한 기술이나 교육 과정이 아니라 전인적 계발에 균형을 둔다. 한가지 이론 혹은 개념이 아니라 균형, 포괄, 연계의 틀을 강조하며 아동이 가진 지성, 정서, 사회, 창의, 미, 영성적 등의  다양한 잠재력의 발달에 관심을 둔다.

관계성 및 공동체 의식 중시: 생태학적 소양은 기본적으로 다른 것과의 관계성 및 공동체 의식을 중시한다. 홀리스틱 교육도 마찬가지의 관점이므로 다른 것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며 공동체의식을 갖고 이를 보호해야 할 실천적 의식을 기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영적 지식 중시:홀리스틱 교육은 영적 지식(어느 종파에 속하지 않은)을 가치롭게 여긴다. 영성은 모든 삶과 연계된 상태이며 통일 속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이는 전체를 생각하는 관점과도 이어지는데, 모든 생명체는 영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런 생명에 대한 '외경'과 생명체 간의 '관계성'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은 존재, 소속, 보살핌의 경험이며 다양한 감정을 이해하는 근거다. 영성은 경이감, 우주의 신비에 대한 경외, 삶의 목적의식. 인간 영혼의 지고한 열망을 향한 것이다.

문화적 맥락(삶의 맥락) 중시: 홀리스틱 교육은 모든 지식이 문화적 맥락 속에서 창조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지식은 사실에 대한 공유된 관점 그 이상이 아니다. 따라서 학습자들이 그들의 삶의 문화적, 도덕적, 정치적 맥락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도록 조장한다.

 

 

생태주의와 홀리스틱도 포스트모던한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기존의 모더니티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따라서 모더니티에 근거한 우리의 공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 및 개선 방안을 찾는데 좋은 사고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단순한 학교 공교육제도에 대한 비판부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른 산업화 사회 속의 황금만능주의를 비롯한 무한경쟁체제, 개인이기주의적 사고방식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다같이 함께 잘사는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교육관이 아닐까. 또한 이러한 사고양식에 따라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인듯 하다.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카테고리 없음2013. 4. 16. 22:22
728x90

三十五年夏六月 遣使入唐賀正 仍附表陳謝 曰 伏奉恩勑 賜浿江以南地境 臣生居海裔 沐化聖朝 雖丹素爲心 而功無可効 以忠貞爲事 而勞不足賞 陛下降雨露之恩 發日月之詔 錫臣土境  廣臣邑居 遂使墾闢有期 農桑得所 臣奉絲綸之旨 荷榮寵之深粉骨麋  身無由上荅 , (성덕왕 35년)

遣阿湌 貞節 䓁檢察北邉始置大谷城等十四郡縣 ( 경덕왕 7년)

二十一年夏五月築五谷鵂巖漢城獐塞池城徳谷六城各置太守 (경덕왕 21년)

 

『삼국사기』,[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해석:

1) 성덕왕 35년 여름 6월 사신을 당에 파견해 새해 인사를 올리고 표를 올려 사례해 말하길 엎드려 패강이남지역땅을 하사한다는 은혜로운 칙서를 받듭니다 신은 바다건너 변방에 살며 성조를 입었으나 비록 충성된 마음을 먹기는 하였으나  본받을만한 공적은 없었으며 충절로 일을 삼았으나 항상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폐하의 우로같은 은덕을 받고 일월의 조를 발해 신의 영토에 새기고 넓은 고을에 살게 되었으니 간벽할 시간을 따르게 되었고, 농상할수 있는 장소를 얻었습니다. 신은 명령을 받드니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2)아찬 정절등으로 하여금 북쪽 변방을 검찰하고 대곡성등 십사군현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3)21년여름5월 오곡 휴암 한성 장새 지성 덕곡 여섯 성을쌓고 각각 태수를 두었다.

 

1번은 성덕왕대에 당나라와 발해말갈정벌에 나섰을때 별 소득이 없었지만[각주:1] 당에서 그에 대한 대가로 패강 이남의 땅을 사사한 것에 대한 감사의 표를 올린 상황을 서술했다. 패강은 지금의 대동강이다. (후에 패강진이 개성부근을 말하는 것으로도 추측할 수 있고 삼국유사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1)성덕왕(제위 702~737)과 그의 치적

성덕왕은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형인 효소왕과 어머니가 같다. 즉위시 효소왕이 아들이 없어 화백회의에서 회의를 거쳐 왕위에 올랐다. 성덕왕대는 무열왕 문무왕 신문왕 효소왕 성덕왕으로 이어지는 신라 중대 왕권강화의 흐름에서 가장 최정점에 올라있던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강력해진 왕권을 기반으로 많은 정책을 실시했다.

신라 중대에는 집사부의 기능이 강화되어 중시(경덕왕대 시중으로 변경됨)의 권력이 높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대등의 제도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단지 중대에는 상대등이 왕권을 옹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중대의 왕권은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덕왕 제위기에는 활발한 대외 관계활동이 두드러진다. 제위기간중 46회의 견당사를 보냈으며 중국에 많은 유학생을 보냈으며, 732년 발해의 등주 침입으로 이은 733년 발해 원정에 참여함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반대로 일본과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735년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왕성국이라 칭하며 높아진 자존감을 나타냈으며, 이에 일본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원정론까지 나오게 된다.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호국불교적인 입장을 취했다. 성덕왕은 전광대왕이라는 불교식 왕명을 가진 중대의 유일한 왕이었다. 봉덕사를 건립해 무열왕을 추복하고 왕실의 안녕을 기했다.

또한 유교적 예제의 정비와 국가불교도 고취하였다. 717년 당에서 귀국한 김수충(金守忠)이 공자 이하 10철과 72제자의 도상을 가져오자 왕은 이를 국학에 안치토록 조치하였다. 또한 718년에는 누각전(漏刻典)을 설치하였고, 721년에는 내성 기구 속에 소내학생(所內學生)을 두어 장차 문한계통에서 종사할 요원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제도정비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교적 예의에 입각하여 각종 예제를 정비한 것이다. 유교사상과 의례를 강화함으로써 가까스로 확보한 평화를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2)신라의 지방통치제도

(1)통일 이전

초기엔  왕경을 6부(급량, 사량, 본피 모량, 한시?, 습비?)로 편제한것이며 이는 종래 부족적 전통을 행정적 조직으로 개편한 것으로 지방제도를 정비했다. 왕경인은 17관등의 경위를 보유했다. 이 시기까지는 족제적 전통이 남아 있었으며  지방외위와 경위가 구별되었다.  지방의 촌주 등은 외위를 갖게 되는 것. 또한 지방에 소경과 주 군 촌의 제도를 설치 실시했다.

①소경

소경은 왕경을 모방한 지방의 특수행정구역으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의 성격이 강하였다. 소경의 장관을 사신(사대등)이라 불렀다. 소경은 514년(지증왕15)에 아호촌에 처음 설치하고, 557년(진흥왕 18)년 국원에, 639년(선덕여왕 8) 하슬라에 설치했다.

②주

주의 장관은 군주라 칭했고 주치도 군략상의 필요에 따라 이동해 신라의 주가 행정구획보다는 군사적 성격을 띠었음을 알 수 있다.

주는 505년(지증왕6)에 처음으로 실직주를 두었고 진흥왕대까지(540~576) 사벌주, 신주, 비사벌주, 비례홀주를 합하여 5주가 성립 되었다.

③군

주 밑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 당주가 파견되었다.

④촌(성)

군 밑에 속한 행정구역으로 도사가 파견되었다. 군과 촌도 군사적 성격이 강한 행정구역이다.

 

2)통일 이후의 지방행정의 정비

 

 

 

그림 9주 5소경 - 출처 7차교육과정 국사교과서

685년(신문왕5)에 9주 5소경의 지방제도를 마련했다. - 이는 통일전 신라의 5주를 바탕으로 백제와 가야지역에 4주를 설치하여 9주로 만들고, 새로 편입된 고구려의 옛 땅을 북방의 주에 포함시킨 것.

통일전 국원소경, 북원소경, 금관소경 설치되었으나 신문왕대 서원소경, 남원소경이 설치되었고 경덕왕때 국원소경이 중원소경으로 개칭되었다. 이는 수도인 경주가 지방에 치우쳐 있음을 보완하고 지방세력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소경에는 사민정책을 실시해 귀족들을 이주시켜 살게했다. 신라의 5소경은 행정구획의 의미보다 정치적 또는 문화적 필요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주의 장관은 661년(문무왕1) 군주에서 총관으로 고쳐지고 785년(원성왕1)에 다시 도독으로 개칭되는데 당제를 모방해 종래의 군사적인 성격에서 민정장관의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주 밑에 군과 현을 설치했는데(성덕왕) 통일전의 군과 촌을 개편한 것으로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120군 350현으로 나왔다. 군의 장관으로 태수가 임명되고 현에는 현령과 소수가 있었으며, 주와 군에 감찰의 임무를 가진 외사정이 설치되었다.

주군현에는 토착인으로 리를 임명해 외관을 보좌하도록 했는데 토착세력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을 상경시켜 관부의 일을 보게 하는 상수리제도를 마련했다.

주군현 밑에는 촌이라는 행정구역이 잇었는데 자연촌과 행정촌이 있었다. 행정촌은 지방의 토착인 유력자를 촌주로 삼아 자치케 했는데 이들은 현령의 통제를 받았다

 

특수 행정조직으로 부곡이 있는데 소국의 정복과정에서 이루어진 피정복자 집단이나 전쟁포로의 집단거주지를 의미한다. 주민은 천민이다.

  1. 이때 발해는 제2대 무왕(719~727)의 집권 시기로 활발한 대외 진출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당이 흑수부말갈에 도독부를 설치하고 장사라는 관리를 보내 통치하려 하자 무왕은 장문휴로 하여금 산동성 등주를 공격해 등주자사를 죽였다(732), 이때 당은 신라와 발해를 공격했지만 추위와 눈으로 소득 없이 물러났다(733) [본문으로]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
카테고리 없음2013. 4. 16. 11:58
728x90

1.의미 및 전개

포스트 모더니즘은 1950년대 아놀드 토인비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이며 1960년대 활발하게 나타난 사회적, 문화적, 학문적 현상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이다. 학문적으로는 1979년 리오타르에 의해 학술적 용어로 사용되어 등장했다. 이때 하버마스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속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문학, 건축, 미술, 등의 예술을 비롯해 철학, 미학, 사회학, 정치학 등 학문 분야에 전반적으로 나타난 기본적인 인식체계의 변화 현상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탈 이데올로기 사회, 후기자본주의 소비사회, 디지털영상 정보화 사회, 신 중간계급 사회, 신과학 사회의 새로운 특징을 대변하고 정당화하는 시대사조 혹은 문화논리를 일컫는다. (간단히 말하면 기존 모더니티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사조들을 싸잡아 부르는 말 철학에 실체가 있다고 하면 어폐가 있겠지만 딱 무엇이다 라고 부르기도 뭐한 광범위한 사조)

이는 계몽사상으로 대표되는 근대사회의 보편적, 합리적, 절대적, 객관적 총체적 비판을 지향한다.

 

대표적으로 후기 구조주의자인 리오타르, 데리다 , 푸코 등으로 시작해 정신분석학 분야의 라캉 들뢰즈 정치철학 분야의 마르쿠제, 장 보드리야르, 과학철학의 토마스 쿤 문학이론의 롤랑 바르트 등이 있다.

 

3.포스트 모더니즘의 기본 입장

(1)반정초주의

지식이나 인간 인식에 있어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본질(기초)가 존재한다는 근대철학의 기본 가정과 신념을 비판하고 배격한다. 이는 서양의 근대적 정신과 학문적 방법의 객관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종식을 의미한다.

 

(2)반합리주의, 다원주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성의 절대성과 객관성을 부정한다. 근대사회는 이성적이고 주체적인 자아인을 추구하였으나 인간의 자아란 우연적 타율적 분열적 모순적이므로 결코 합리적 사고의 행동주체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간은 결코 합리성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다원론적 사고를 강조하는 입장과도 일맥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이 이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은 현실세계라는 한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다양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정하고자 한다.

 

(3) 상대적 인식론

지식의 보편성과 객관성 부정: 이러한 사고는 지식에 대한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간의 인식을 통해 형성되는 지식이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며 항상 변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지식은 어느 것이나 역사성과 사회성을 초월한 인식의 절대적 기준을 가질 수는 없다. 보편타당한 지적 탐구활동의 기초란 없으며, 따라서 모든 인식활동은 인식자의 주관에 따른 상대적 관점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불변의 실재와 그것에 대한 합리적 인식은 허구이며, 가능성을 전제로 한 학문적 체계는 허구이다.

 

소서사(국지이론) 지향: 또한 이런 관점에서 모든 사람, 모든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대서사를 거부하고 개인이나 집단에 초점을 맞춘 소서사에 관심을 둔다. 그동안 무시되었던 여성 및 성차별, 빈민, 아동, 환경문제 등에도 관심을 둔다. (그런데 이런거 하시는 학자분들한테 미시적인 분야 한다고 하면 별로 안좋아 하는듯.. 부분으로 전체를 읽는다는 자부심이 있는듯)

(4)탈정전화

근대사회의 문화적 정전은 보편적 진리와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고 정전에 부합하는 생활양식은 고급문화로 간주되어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인정, 수용, 계승하게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관점에서는 정전은 의미가 없으며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 또한 무의미하다. 저급문화 고급문화로 나누고 고급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근대적인 시각이며 포스트모던에서는 생활방식의 차이, 사고방식의 차이의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문화적 다원주의를 주장한다.

(5)유희적 행복감과 향유

그러므로 포스트모던에서는 주체적 자아의 확립, 보편적 진리의 습득, 고급문화의 입문 등을 신경 쓸 필요가 없으며, 자기 자신과 주변에 대한 실험적 유희적 감성적 접근태도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며 역사적 도덕적 중압감에서 벗어나 유희적 행복감을 향유하는 것이 자연현상과 인간적 본질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근대적 사고방식(절대 객관성과 확실성, 이성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고 다원성과 상대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모더니티에 대한 권위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하며 이를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하나의 진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사회, 수많은 담론이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4.포스트 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차이

포스트 모더니즘은 거칠게 말하면 모더니즘의 반대라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과 모던의 차이를 보려면 먼저 모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1)모더니즘

모더니즘은 데카르트 이후 전개된 계몽주의적 세계관을 가리킨다. 중세 신의 세계에서 탈피해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데카르트의 철학은 당연스럽게 인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믿음을 펼쳤다. 실재와 진리, 객관성과 중립성, 법칙과 논리, 구조와 분석 등의 개념들이 핵심적인 근간을 이루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절대적 근거가 존재한다는 신념체계이다.

모더니즘은 합리주의, 근대정신(이성에 의한 질서 확립), 자유인의 삶(이성에 의한 삶), 보편적 진리의 근원으로서의 이성 등 이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을 전제로 하는 사고방식을 전개했다. [각주:1] 

이러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의 시대에 공교육 제도가 확립되었다. 서구 공교육제도는 합리성, 체계성, 객관성, 조직성, 효율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보편적 가치체계를 가르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2)포스트모더니즘과의 차이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식의 절대성과 객관성이라는 모더니즘의 근본 전제를 부정한다. 이는 교육체계에도 영향을 미쳐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에 뿌리깊이 박혀있던 신념과 인식체계의 근거를 와해시키고 있다.

 

(3)그로 인한 교육현장의 혼란과 대안 모색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적 사고는 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에 대한 권위는 부정되어 교사의 지적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식과 신념의 보편적 의미나 가치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는 기존 교사나 교육학자들에게 기존 교육방식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기존의 익숙한 이해 방식과 달라 혼란을 부추긴다고 감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현실적 교육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5.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적 입장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의 근대적 공교육 제도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을 가하는 입장이다. 따라서 기존 교육관이 가진 학생관, 지식관,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체제의 전환을 요구했다.

(1)학생관의 전환

전통적인 교육은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보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들이 지식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로 간주한다. 즉 학생을 백지나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을 이해하고 습득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학생들의 관심, 흥미, 기호, 사유 및 행동양식 등에 깊은 관심과 주의를 가져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그들의 가진 비판적 능력과 창의성, 상상력을 신장 발현하도록 해야 한다.

(2)지식관의 전환

전통적인 지식은 실재 세계를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타당하며 진리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교과서의 형태로 조직되어 가르쳐지며 평가에서도 기본적인 준거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시대의 언어게임이나 사회제도 또는 자기 관념을 영속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지식 또는 신념체계는 완전하며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과 신념체계가 우리 사회의 특수한 전통과 문화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사회적 산물임을 인식하도록 하고 이러한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을 이해하도록 해 비판적으로 사고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통해 지식을 보편타당하고 유일한 것 당연히 옳은 것이 아니라 대안과 다른 사고체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개발적이고 허용적인 태도를 배워야 한다. 즉 다원적 유동적인 열린 지식태도, 지식관이 요구된다.

(3)교육내용의 전환

기존의 논리적으로 인증 가능한 인지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동안 가치가 없나 적은 것으로 치부했떤 주변적 요소들(기술적 요소, 윤리적 요소, 미적인 요소)도 인지적 지식과 대으하게 다루어야 한다.

학습내용 및 경험에 대한 학생들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되며, 교과서가 정답이 아니라 학생들의 창의적, 비판적 다원적 사고를 자극하고 주체적 문제 해결력을 길러 주는 학습자료로의 교과서가 요구된다.

(4)교육방법의 전환

일방적 전달은 학생들을 무비판, 수동, 경직성을 초래하며 학생과 일방적 관계만을 존재시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사-학생, 학생-학생간의 개방적 비판적 대화 토론, 협동, 자율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탐구방법이 요구된다.

학생들 간의 공동학습, 협력학습을 추구하며, 개개인을 격려하고 학습 흥미를 유발하며, 이론보다는 실제를 중시하고 토의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협력학습을 통해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게 함으로써 다원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5)교육체제의 전환

근대 공교육 제도는 필연적으로 획일성과 경직성을 띠기 마련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 적합한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체계로의 변화가 요구된다. 기존 공교육 체제 내에서 변화하는 사회를 수용 할수 있는 체제 탐색과 함께 다양한 대안교육 모델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개발해야 나가야 한다. 대안학교, 열린교육, 홈스쿨링 등

 

6.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적 영향

(1)인간의 모든 경험, 특성이 조화롭게 발달되는 전인교육의 중시

(2)인간의 지식 형성과정은 상대적이므로 그 과정을 이해하면서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3)개인이 지닌 가치에 따라 지식을 구성해 간다고 보기 때문에 학습자의 자발적 학습을 중시한다.

(4)인간이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에 공동체에 관심을 둔다.

(5)학습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통한 교육을 강조해 교육이 학교를 넘어 평생교육을 강조한다.

 

7.포스트 모더니즘의 교육현상 연구에 주는 시사점

(1)교육에서의 통제 간파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공교육(학교)가 지식을 전수받는다는 이름 아래 통제가 자행되는 감옥같은 곳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갖게 했다. 푸코는 학교는 미시 권력이 작동하는 감시체제라고 했다.

(2)정체성에 관한 시사점

포스트모더니즘의 연구 대상중의 하나는 대중의 일상적 삶과 문화, 잠재적 행동역학, 행위자들의 상호작용 전략 및 사회적 세계에서 그들이 느끼는 점, 그들이 세상을 해석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이런 문화적 배경의 분석을 통해 학생, 교사, 학부들의 정체성이 형성되는가를 성, 인종, 종교, 나이, 일의 성격 등에 따라 탐구해볼 수 있다.

(3)지식에 관한 시사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거시적 이론을 하나의 권력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러한 전통적 지식관을 해체하고 비판적 인식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학교 지식에 관한 탐구에서 지식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양하게 구축되는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으며 절대주의적 지식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4)학생, 교사, 학부모 문화 연구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관점, 다양한 자야, 다양한 가치관을 강조하며 그에 대해 다양한 인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가치관이 난립하는 배경에서 어떻게 그들의 의견을 모을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

 

8.포스트 모더니즘의 한계점.(김병욱)

(1)포스트 모더니즘의 개념도 어렵고 추상적인 것이 많다. 이 또한 하나의 권력체계다.

(2)보편성을 거부하기 위해 개별, 다양, 국지를 중시하다 보면 중요하게 통용되는 거시적 특성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즉 모든 현상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모던보이 같은 현상이 좋은 예)

(3)포스트모더니즘이 이성의 파기를 강조하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성의 파기보다는 진정한 이성의 추구 혹은 이성의 회복이라는 점. 다양성을 포용하고 타자를 끌어안아 상호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이성이다. (하버마스의 논리)

(4)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 이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나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지나친 상대주의는 스스로에 대한 가치관정립을 방해할 수도 있다.

(5)포스트모던은 이해와 인식의 상대주의를 취하지만 모든 이해와 인식이 상대적일 수만은 없다. 인간은 이성적 인지작용을 통해 보편적 판단과 행동을 하기도 한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공통된 특성이 있다는 것)

 

9.포스트 모더니즘의 도전과 수용(이돈희)

 

(1)포스트모더니즘의 학교 지식체계에 대한 도전

 

포스트모더니즘이 정당화되면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의 전통적 의미와 체계는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권위 있는 이론과 보편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 지식으로 조직된 전통적 ㄱ과구조와 그러한 지식을 생산한 탐구의 원리에 따라 개발된 교육방법은 치명적 도전을 받게 된다.

 

(2)방법으로서의 지식

학문, 예술 제도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삶의 방법'으로 이해할 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문제 해결의 도구로 의미를 갖는다. 동일한 사물과 현상도 설명하는 수많은 방법이 있을 수 있기 때문. 지식 혹은 방법의 보편성은 문화적으로 공유한 내용으로 한정한 것으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또한 지식은 상대적 개념이다. 이말은 포스트모던한 것도 전통의 틀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던도 단지 하나의 지식을 대하는 방법론일 뿐. 전통적인 개념도 절대성을 잃는다고 해서 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공부할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업적이며 경험으로 이해하고 공부할 소재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1.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완전히 부정되지만 하버마스 같은 학자들은 이성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저버리지는 않았다. 다만 하버마스는 대화와 소통을 통한 이성의 사용을 전제로 했다. [본문으로]
728x90
Posted by 런닝보이